지금 당신은 행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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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올해 여름방학을 다 지나보내고 나서야 문구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스무 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고교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자유와 해방감에 휩쓸렸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이유로 아침부터 야간(강제) 학습까지, 주말까지 책상 앞에만 앉아있던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인가. 꿈만 꿨던 것들을 이제는 실현시킬 수 있다는 설렘과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첫 학기 중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높은 학점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운이 좋게도 원했던 결과를 얻었기에 희망이 샘솟았고 무언가를 계획하고 달성하고자 하는 욕심은 더욱 커졌다.
처음 맞은 여름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통장을 두둑이 채웠고, 시간을 쪼개서 자격증 공부를 했다. 대학 선배들은 방학에는 쉬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지금 쉴 시간이 어디 있어, 더 바쁘게 사는 사람도 많은데’라며 더욱 채찍질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난 뒤 2학기 개강 한 달째, 나에게 남은 것은 면역력이 약화된 신체와 각종 알레르기, 우울감이다. 나는 말 그대로 열정은 넘쳤지만 그 열정이 과도해 몸이 따라주지 못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어른들이 귀에 박히도록 해주신 말씀이 있다. “지금 열심히 해두면 미래의 네가 행복하고 편하다”, “남들이 놀 때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 누구나 학창시절 때 한 번쯤 들었을 법한 그런 얘기다. 어른들의 말을 굳게 믿었기에 고등학교를 입학한 이후부터 대학생인 지금까지 매사에 항상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만족을 몰랐으며 나에게 과분할지도 모르는 목표를 계획했고, 행복할 것으로 생각되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무작정 달렸다.
나는 휴식을 취함에 익숙하지 않았다. 바쁘다고 느껴야 안심이 되고, 내 몸에서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지만 스스로 ‘열심히 살기에 행복하다’고 최면을 거는 것이 습관이 됐다.
하지만 건강의 이상을 느끼고부터 하루에 8~10시간을 할애했던 알바를 쉬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정말 오랜만에, 내 미래가 아닌 ‘현재의 나’에 대해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몸이 아프니 우울함은 기본이고 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을까?’, ‘이렇게 살면서 얻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 날 우연히 대학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 ‘지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쉽고 뻔 한 말이 번득 머리에 떠올랐다.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서 현재의 내가 행복하지 못한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취업과 성적 스트레스에 우울증에 시달려 상담센터를 찾는 대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기사 속의 내용에 공감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를지라도, 열심히 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선뜻 휴식과 여유를 갖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이 되는 경쟁과 비교, 도태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학생 때부터 요구당했던 성실의 굴레 때문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한다. 미리 준비하고 쉬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좋은 성적을 가져갈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마라톤이기에, 자신의 몸을 살피고 적절함을 유지하는 것, 중간중간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지금 행복하자’라는 마인드를 가진 뒤 물론 부작용도 있다. 현재에 행복하기 위해 과제나 시험 공부를 미룰 때까지 미루는 아주 고약한 버릇이 들고 있다. 부모님께서 걱정되어 한마디 하시면 “나 지금 사춘기가 왔나봐, 해야 할 때 내가 알아서 잘 할게”라고 말하는 느긋함이 생겼다.
매일 쉬고 싶고, 놀고 싶다 생각이 드는 것이 고등학교 때 오지 않았던 사춘기가 정말 지금 왔는지도 모르겠다.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이 과정을 통해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해서 앞으로는 지치지 않고 마라톤을 잘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스무 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고교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자유와 해방감에 휩쓸렸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이유로 아침부터 야간(강제) 학습까지, 주말까지 책상 앞에만 앉아있던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인가. 꿈만 꿨던 것들을 이제는 실현시킬 수 있다는 설렘과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처음 맞은 여름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통장을 두둑이 채웠고, 시간을 쪼개서 자격증 공부를 했다. 대학 선배들은 방학에는 쉬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지금 쉴 시간이 어디 있어, 더 바쁘게 사는 사람도 많은데’라며 더욱 채찍질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어른들이 귀에 박히도록 해주신 말씀이 있다. “지금 열심히 해두면 미래의 네가 행복하고 편하다”, “남들이 놀 때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 누구나 학창시절 때 한 번쯤 들었을 법한 그런 얘기다. 어른들의 말을 굳게 믿었기에 고등학교를 입학한 이후부터 대학생인 지금까지 매사에 항상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만족을 몰랐으며 나에게 과분할지도 모르는 목표를 계획했고, 행복할 것으로 생각되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무작정 달렸다.
나는 휴식을 취함에 익숙하지 않았다. 바쁘다고 느껴야 안심이 되고, 내 몸에서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지만 스스로 ‘열심히 살기에 행복하다’고 최면을 거는 것이 습관이 됐다.
하지만 건강의 이상을 느끼고부터 하루에 8~10시간을 할애했던 알바를 쉬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정말 오랜만에, 내 미래가 아닌 ‘현재의 나’에 대해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몸이 아프니 우울함은 기본이고 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을까?’, ‘이렇게 살면서 얻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 날 우연히 대학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 ‘지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쉽고 뻔 한 말이 번득 머리에 떠올랐다.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서 현재의 내가 행복하지 못한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취업과 성적 스트레스에 우울증에 시달려 상담센터를 찾는 대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기사 속의 내용에 공감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를지라도, 열심히 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선뜻 휴식과 여유를 갖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이 되는 경쟁과 비교, 도태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학생 때부터 요구당했던 성실의 굴레 때문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한다. 미리 준비하고 쉬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좋은 성적을 가져갈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마라톤이기에, 자신의 몸을 살피고 적절함을 유지하는 것, 중간중간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지금 행복하자’라는 마인드를 가진 뒤 물론 부작용도 있다. 현재에 행복하기 위해 과제나 시험 공부를 미룰 때까지 미루는 아주 고약한 버릇이 들고 있다. 부모님께서 걱정되어 한마디 하시면 “나 지금 사춘기가 왔나봐, 해야 할 때 내가 알아서 잘 할게”라고 말하는 느긋함이 생겼다.
매일 쉬고 싶고, 놀고 싶다 생각이 드는 것이 고등학교 때 오지 않았던 사춘기가 정말 지금 왔는지도 모르겠다.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이 과정을 통해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해서 앞으로는 지치지 않고 마라톤을 잘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