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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 은행나무 열매의 고약한 냄새에 담긴 뜻
2019년 10월 03일(목) 04:50
도시의 가로수로 은행나무만 한 나무도 없다. 은행나무는 수명이 길고 생명력이 강할 뿐 아니라 공기 정화 능력도 뛰어나다. 게다가 지나치게 넓게 가지를 펼치지 않아서 가지치기에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또한 뿌리가 땅속 깊이 내리는 ‘심근성’ 나무여서 보도블록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는 점도 가로수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무다.

산림청이 발표한 2015년 말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가로수 678만 그루 가운데 벚나무 종류가 약 146만 그루로 가장 많았다. 은행나무는 그 다음으로 100만 그루가 넘게 심어져 있다.

은행나무 다음으로 많은 가로수는 은행나무의 절반이 채 못 되는 약 44만 그루의 이팝나무다. 은행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는 수치다. 우리 광주시에 심어진 은행나무 가로수도 4만6000그루를 넘는다.

이토록 많은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노란 단풍으로 도시를 환하게 밝힌다. 따러서 가을의 상징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데 열매의 고약한 냄새가 골칫거리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나무여서, 열매는 암나무에만 열린다. 얄궂은 것은 은행나무를 심을 때에 암수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은행나무를 예로부터 ‘공손수’(公孫樹)라 불렀는데, 이는 할아버지가 심은 은행나무의 열매는 그의 손자 대에서나 겨우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은행나무는 적어도 20년 정도 자라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이때에야 비로소 암수를 구별할 수 있다. 결국 도시의 가로수에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암나무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광주시의 은행나무 가로수 가운데에도 고약한 냄새를 가진 열매를 맺는 암나무는 전체의 약 20%인 9000그루를 넘는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은행 열매의 냄새를 차단하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내놓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암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수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은행나무 열매를 일찌감치 채취하기도 한다.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냄새를 풍기기 전에 나뭇가지를 흔들어 털어내고 빠르게 수거하는 방식이다.

또 최근에는 은행나무의 DNA를 분석하여 암수를 구별하는 감별법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는 암나무를 골라 심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은행나무 잎의 노란 단풍을 좋아한다 해도 이 고약한 열매까지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터. 그러니 이 같은 여러 대책에 일정한 예산이 들어간다 해도 마다할 도시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구 위에 가장 먼저 자리 잡고 가장 오래 살아남은 식물인 은행나무는 무려 3억 년 동안 사람의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왔다. 긴 세월 동안 나무는 숱하게 많은 생명들이 멸종한 빙하기와 같은 위기의 시기도 이겨내며 끊임없이 자손을 배출하고 키우면서 사람의 마을을 지켜 왔다.

심지어 은행나무는 1945년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의 히로시마에서도 살아남았다. 당시 피폭 지역에서는 모든 생명이 전멸했지만, 이듬해 봄에 시커멓게 타들어 간 은행나무에서 초록의 새 잎이 솟아 나왔다. 원자폭탄을 이겨낸 유일한 생명이었다.

은행나무는 암수의 조화를 이루며 우리 곁에 살아남았다. 열매의 고약한 냄새는 은행나무가 애면글면 자신의 자손을 지켜 온 고유의 방식이다. 냄새 때문에 암나무를 퇴출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3억 년을 지켜 온 생식 본능을 차단해야만 하는 사람의 성마름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자칫 도시의 모든 은행나무들이 생식 기능 마비로 인해 스스로 번식하지 못하는 무생물과 다름없는 물질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앞선다.

더불어 산다는 건, 다른 생명의 원초적 본능을 지켜 주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른 생명의 본능을 망가뜨리면서 나의 본능을 고집하는 건, 더불어 사는 방식이 아니다.

은행나무의 고약한 냄새가 사라진 도시는 원자폭탄보다 더 위험한 환경으로 진입하는 조짐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사는 건강한 땅으로 이어 가기 위해서는, 가을 초입 잠깐 동안 풍기는 고약한 냄새쯤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소명이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