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야율대석 요 태조 8대손, 중앙아시아에 서요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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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야율대석 요 태조 8대손, 중앙아시아에 서요 건국
2019년 09월 03일(화) 04:50
야율대석(耶律大石, 1087~1143)의 자는 중덕이고 묘호는 덕종이다.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의 8대 손이다. 요나라가 금나라에 복속되자 중앙아시아로 서진해 서요(西遼) 왕조를 세웠다.

천조제(天祚帝)는 요의 마지막 황제다. 8대 황제 도종의 황태손으로 1101년 도종이 죽자 황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요왕조는 오랜 정쟁으로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사냥에 깊이 빠져 정치를 등한시했다. 특히 간신을 총애해 통치 질서가 크게 흔들렸다. 야율대석은 요왕조가 기울어가는 가운데 관직에 나갔다. 1115년 진사에 급제해 한림응봉을 거쳐 승지에 임명되었다. 그해 여진족의 완안아골타가 독립해 금나라를 세웠다. 이후 태(泰)와 상(祥) 두 주의 진사와 요흥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완안아골타는 독립을 선언하고 요나라가 통치하던 여진의 전초기지 영강주를 함락시켰다. 1115년 9월 금나라 군대는 길림의 황룡부를 점령하고 12월 요의 대군을 격파했다. 요는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1120년 금나라는 세 방향으로 수도 상경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런 와중에 천조제는 부인과 아들을 죽이는 참극을 초래했다. 문비와 그녀 소생의 진왕을 죽였다. 문비 여동생의 남편 야율여도는 살해를 우려해 금나라로 탈주했다. 1125년 정월 천조제는 금나라 군대에 포로로 잡혔고 요나라는 멸망했다.

1122년 금나라 군대가 계속 남행하자 대석은 연경을 방어했다. 천조제가 내몽골로 달아나자 천조제의 숙부인 야율순을 황제로 옹립해 연경에 북요 정권을 수립했다. 야율순이 죽자 그의 처 소덕비를 태후로 세우고 연경을 방어했다. 1123년 연경이 함락되자 부득이 서쪽에 피신해 있던 천조제 일행과 합류했다. 그러나 요나라 멸망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자신을 감시하던 북원추밀사 소을설을 죽이고 측근 200여명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탈주했다. 서역의 가돈성(可敦城)에서 여러 거란족과 회맹을 맺었다. 1131년 금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가돈성을 공격했지만 대석은 쉽게 금군을 격파했다. 1128년 금나라 포로가 된 천조제가 사망하자 1132년 2월 정식으로 황제에 즉위했다. 천우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연경으로 정해 서요 왕조를 건국했다.

대석은 요나라 패망을 교훈 삼아 각 종족간 화해와 융합을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삼았다. 황제 취임 후 약 10년간 투르키스탄 경략에 힘을 기울였다. 1141년 셀주크 왕조의 술탄 산자르가 이끄는 이슬람 군대를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근처에서 격파했다. 이로써 아무다리강과 시르다리강 사이의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후 호라즘 샤왕조를 정벌해 복속시켰다. 그는 다민족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종교에 대해 관용적 입장을 견지했다. 어떤 신앙도 강요하지 않았고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대우했다. 이슬람교, 불교, 경교, 마니교, 토속신앙 등이 골고루 전파되었다. 서요 산하의 속국들은 조공을 바치고 한 명 씩의 관리를 중앙에 파견하였다. 가구당 1디나르의 세금을 납부하였다. 종교, 문화, 경제에 관해 관용적인 정책을 편 까닭에 거주민의 민심을 얻었고 빠른 시일내에 서역의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후일 금의 야율초재가 말하기를 “문화와 교육을 중시하고 장려해 서역인들은 지금도 야율대석을 기리고 있다.”

대석은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강력한 금나라 군대를 여러 차례 격파하였다. 10만의 송나라 군대의 공격을 잘 막아 연경을 지킬 수 있었다. 황제 즉위 후 금나라를 정벌해 옛 요나라를 복원하려 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후 중앙아시아로의 세력 확장에 주력했다. 셀주크 왕조와 호라즘 왕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서요는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패주가 되었다.

서요는 통치 지역이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독립적인 정권을 유지했다. 중원을 장악한 금왕조 조차 서요의 군사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회유 정책과 포용 정책을 적절히 구사해 다민족간의 민족갈등, 종교갈등, 계급갈등을 최소화하였다. 야율대석은 요의 태조 야율아보기에 비견되는 거란국의 걸출한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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