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한국의 ‘일식’은 누구의 음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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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나라에 가건 현지에서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음식은 이탈리아 음식이다. 올리브오일, 토마토, 마늘, 소금 그리고 밀가루(듀럼밀)만 있으면 어떻게든 ‘이탈리아다운 맛’을 구현할 수 있다. 복잡한 조리법이나 특별한 양념 대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이 수 세기에 걸쳐 발달해 온 탓이다. 반면 복잡한 조리법과 독특한 양념이 필요한 중국 음식은 좀처럼 외국에서 뿌리내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이민의 역사가 긴 중국은 일찍부터 세계로 곳곳으로 퍼져나가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그들 특유의 유대감과 상인 정신을 발휘해 온갖 식재료의 유통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음식은 철저히 현지화 하는데 노력한 반면 중국 음식은 세계 어디서나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왔다.
한국 음식은 이탈리아 보다는 중국 음식에 가깝다. 된장, 간장, 고추장, 참기름 등 기본 조미료에서 각종 채소류에 이르기까지 다른 나라에서 잘 쓰지 않는 고유한 식재료가 있어야 ‘한국다운 맛’을 구현할 수 있다. 중국처럼 많은 인구가 중국만큼 다양한 국가에 정착하지 못한 한국 음식은 이런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에서 어렵게 식재료를 운송해 가거나 대체 가능한 유사 식재료를 현지에서 구해야만 했다. 외국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교포들 가운데는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재배해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먹는 한식은 가격은 비싸고 맛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해외 대도시 가운데 가장 많은 한국 음식점이 몰려있는 미국 LA와 뉴욕의 ‘코리아타운’이 상징적이다. 교포가 늘어나고 현지인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LA의 경우는 뉴멕시코, 뉴욕의 경우는 뉴저지라는 배후지가 생겼다. 뉴멕시코와 뉴저지에서는 한국 음식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채소가 재배되고 있다.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비율도 높다. 두부와 콩나물 공장도 있고 심지어는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의 발효식품까지 생산한다. 유통 시스템도 완벽하게 구축돼 다양한 신선식품이 하루 이내에 매장에 공급되고 가격 또한 저렴하다. 덕분에 오늘날 미국 LA와 뉴욕에서는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만족도 높은 한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본고장에서 먹는 것과 다름없는 음식이 구현되면서 이를 대하는 미국인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한국 음식이 재평가되고 있다. LA타임즈와 뉴욕타임즈를 비롯해 미슐랭가이드, 자갓서베이 등의 레스토랑 평가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음식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LA와 뉴욕에서 새롭게 불고 있는 한식 붐은 한류의 확산과 함께 미국에서도 완벽하게 구현 가능한 공급 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긴 시간을 통해 뿌리 내린 한국 음식이 한미 간의 무역 분쟁이나 정치적 갈등으로 미국 현지에서 외면받는다면,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어떨까?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많은 일본인이 한국에 정착했다. 사람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음식의 전파를 수반한다. 일본 음식이 한국에 뿌리 내린 지 족히 한 세기가 지났다. 이를 우리는 ‘일식’(日食)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일본에는 일식이라는 표현이 없다. 일본은 자신들의 고유한 음식을 일식이라고 하지 않고 ‘화식’(和食)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식이라는 표현 속에는 이 땅에 뿌리내린 실체는 인정하되 우리 음식과는 다른 차이를 부각하려는, 일종의 타자화의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일식집의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타자화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그 일식집에서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과 구성 그리고 맛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것은 일본 음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음식에 가깝다.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인 조리사와 고객이 이 땅에서 함께 구축해온 일본풍의 한국 음식이다. 대부분의 식재료 역시 한국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매우 친숙한데 오히려 일본인에게는 생경하다. 그 시작은 비록 일본일지언정 한 세기를 지나면서 완벽하게 한국화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브랜드와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에는 나 역시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동참한다. 하지만 그 시작이 일본이었다고 해서 일식집까지 그 범주에 넣는 것에는 반대한다. 순혈주의는 문화적 다양성의 가장 큰 적이다. 음식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철저하게 사람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때문에 일본풍이라고 해서 이미 한국화된 음식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다. 한국의 ‘일식’은 당연히 한국의 음식이다.
<맛 칼럼니스트>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많은 일본인이 한국에 정착했다. 사람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음식의 전파를 수반한다. 일본 음식이 한국에 뿌리 내린 지 족히 한 세기가 지났다. 이를 우리는 ‘일식’(日食)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일본에는 일식이라는 표현이 없다. 일본은 자신들의 고유한 음식을 일식이라고 하지 않고 ‘화식’(和食)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식이라는 표현 속에는 이 땅에 뿌리내린 실체는 인정하되 우리 음식과는 다른 차이를 부각하려는, 일종의 타자화의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일식집의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타자화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그 일식집에서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과 구성 그리고 맛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것은 일본 음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음식에 가깝다.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인 조리사와 고객이 이 땅에서 함께 구축해온 일본풍의 한국 음식이다. 대부분의 식재료 역시 한국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매우 친숙한데 오히려 일본인에게는 생경하다. 그 시작은 비록 일본일지언정 한 세기를 지나면서 완벽하게 한국화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브랜드와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에는 나 역시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동참한다. 하지만 그 시작이 일본이었다고 해서 일식집까지 그 범주에 넣는 것에는 반대한다. 순혈주의는 문화적 다양성의 가장 큰 적이다. 음식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철저하게 사람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때문에 일본풍이라고 해서 이미 한국화된 음식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다. 한국의 ‘일식’은 당연히 한국의 음식이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