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리얼리티의 자랑스러움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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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은 모국어로 된 소설 읽기의 재미가 얼마나 충만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구어체와 정갈한 문어체가 혼용됐는데, 비문이 없는 단정한 구조 안에 자리 잡은 2019년 한국의 비속어나 유행어, 한국적 뉘앙스를 알아야 비로소 웃거나 울거나 판단내릴 수 있는 유머 같은 것. 이는 아무리 대단한 소설이라도 해외에서 들여온 것들에는 내장되어 있지 않다. 박상영은 이런 것들을 다 부릴 줄 안다. 대한민국에서 한국어를 쓰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이런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한국 사람인 게 다행인 것이다. 작가와 같은 모국어를 쓰게 된 운명에 감사해 하면서.
첫 번째 수록작 ‘재희’는 200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을 청년들의 군상이 룸메이트와 연애사와 취업과 결혼에 이르기는 유장한 일업이 펼쳐지는 귀엽고 섬세한 파노라마다. 그 길에 마주치게 되는 암초를 ‘재희’와 ‘나’는 함께 피하거나 넘는다. 나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재희와 병원에 동행하게 되는데, 재희는 자신의 몸뚱이를 앞에 놓고 펼쳐지는 의사의 무람없는 잔소리와 참견을 견디지 못하고 책상에 놓여 있던 자궁 모형을 들고 자리를 뜬다. 그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언니 또래인 간호사다. 간호사는 수술도 해 주고 태도도 좋은 병원을 소개한다. 자신도 거기에 다닌다면서. 임신중절 수술을 둘러싼 여성의 선택권과 연대에 대한 유머와 통찰은 같은 세대를 압박하는 현실의 문제를 에돌지 않되, 심각하지도 않게 지속된다. 이 힘이 남은 페이지를 단번에 읽게 만든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주인공 ‘나’는 암으로 투병 중인 엄마를 간병할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다. 나는 엄마에게 있어 이해와 인정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엄마로부터 억압과 폭력을 겪었으나 엄마는 그것이 폭력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를 증오하고 거부하는 것 같지만 또한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해와 용서로 이루어진 쉬운 결말을 포기한 채 소설은 거듭 묻는다. 정상성은 무엇인지, 진짜 병든 자는 누구인지. 주인공은 간병으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한때 운동권이었고 지금은 편집자로 일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둘의 사랑은 애틋한 동시에 어색한 기운이 있는데, 이는 남자가 주인공을 교정과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렇다고 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텅 빈 메시지를 방출할 정도로 섣부르진 않다. 그러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이 소설은 알고 있고, 그리하여 내비치는 이 쫄깃하고 광활한 태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나가 가장 진지하고, 가장 오래 사랑한 연인 ‘규호’를 중심으로 규호가 나의 인생에 미래에서부터 시작해 현재가 되었다가, 이제는 과거가 되어 버린 흐름 위에서 이야기의 노를 젓는다.
박상영의 이야기는 카약처럼 뒤집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벽에 부딪쳐 흔들렸다가도 다시 제 방향을 찾는다. 매끈하고 정돈된 플롯에 의해 굴러가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이리저리 맞고 구르는 인생 자체로 보이는데, 실제로 연작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네 편의 소설은 일견 자전적 소설의 면모가 있다. 그렇다고 ‘대도시의 사랑법’이 소설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되레 나를 드러내고 조각하여 다시 편집함으로써 근래에 보기 드문 핍진성을 확보하는 데 완벽히 성공했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온갖 한국적 상황에 놓인 리얼리티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어야 이 소설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으니, 한국어를 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한국인임은 어떤 찜찜함을 남긴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남자이다. 숨길 것도 없이 그는 성소수자이고 그의 소수성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함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오늘도 그 대도시 곳곳에서는 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언어와 폭력이 난무한다. 소설 속 인물들도, 작가인 ‘나’도 한국 사람인 것을 다행으로 느낄까? 글쎄, 그건, 당신이 더 잘 알 듯하지만….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나가 가장 진지하고, 가장 오래 사랑한 연인 ‘규호’를 중심으로 규호가 나의 인생에 미래에서부터 시작해 현재가 되었다가, 이제는 과거가 되어 버린 흐름 위에서 이야기의 노를 젓는다.
박상영의 이야기는 카약처럼 뒤집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벽에 부딪쳐 흔들렸다가도 다시 제 방향을 찾는다. 매끈하고 정돈된 플롯에 의해 굴러가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이리저리 맞고 구르는 인생 자체로 보이는데, 실제로 연작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네 편의 소설은 일견 자전적 소설의 면모가 있다. 그렇다고 ‘대도시의 사랑법’이 소설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되레 나를 드러내고 조각하여 다시 편집함으로써 근래에 보기 드문 핍진성을 확보하는 데 완벽히 성공했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온갖 한국적 상황에 놓인 리얼리티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어야 이 소설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으니, 한국어를 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한국인임은 어떤 찜찜함을 남긴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남자이다. 숨길 것도 없이 그는 성소수자이고 그의 소수성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함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오늘도 그 대도시 곳곳에서는 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언어와 폭력이 난무한다. 소설 속 인물들도, 작가인 ‘나’도 한국 사람인 것을 다행으로 느낄까? 글쎄, 그건, 당신이 더 잘 알 듯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