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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 편집부국장·문화부장] 나는 ‘브랜드 공연’이 싫다(?)
2019년 07월 03일(수) 04:50
서울시립극단의 ‘함익’ 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 귀가 솔깃했다. 작품 모티브가 된 셰익스피어 ‘햄릿’이 어떻게 변신했을까 궁금해서였다. 드디어 지난 4월, 서울 출장 중 관람한 ‘함익’은 흥미로웠다. 보성 출신 김은성이 희곡을 쓴 ‘함익’은 서울 재벌가의 딸 ‘함익’과 그녀의 분신을 등장시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울을 활용한 무대와 조명은 단출하지만 임팩트가 있었다. 희곡은 물론 연출과 배우의 힘을 느끼며 “고전이 이렇게도 변신할 수 있구나” “예술가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새삼스레 생각했다.

며칠 뒤, 광주시립극단의 ‘달빛 결혼식’을 관람했다. 극단 예술감독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1989년 초연된 ‘우덜은 하난 기라’가 원작으로 영호남 지역 갈등과 5·18을 소재로 했다. 공연을 보기 전 ‘지금’ 영호남 지역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뭔가 새로운 해석을 기대하며 작품을 감상했다.

하지만 공연 내내 착잡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두 시간 동안 강의하듯 직설적인 대사가 이어지고, ‘개그 콘서트’에나 등장할 것 같은, 지역감정 관련 낡은 에피소드들이 나열됐다. 1억 8000만 원의 제작비는 모두 인건비로 쓰였는지 무대 세트·조명·의상은 구태의연했다. 이 연극이 초연된 1980년대 후반과 그 즈음에는 분명 ‘의미 있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30년 전의 작품을 ‘지금’ 다시 무대로 불러낼 땐 ‘시대를 관통하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그 시절을 경험한 나 같은 이에게는 이미 낡은 것이 돼 버렸고, 지금의 젊은 관객에게는 다소 생뚱맞게 느껴질 이야기가 30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호출될 이유는 없다.

팸플릿에 실린 이용섭 광주시장의 축사처럼 “다행스럽게도 광주와 대구가 그 벽을 허물기 시작했고, 달빛동맹을 맺어 서로 갈등을 해소하고 동서 화합의 분위기를 키워 가며 인적·문화 교류로 시작해 시대정신을 함께 나누는 관계로 발전해 가고 있는” 시절이다. 마침 공연 날은 광주에서 대구 2·28 항쟁을 상징하는 ‘228번 시내버스’가 달리기 시작한 날이었다. 대구에선 오래 전부터 518번 버스가 운행 중이다.

물론, 지금 지역감정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작품에서 언급되는 그런 에피소드가 통용되는 시대는 지났다. 얼마 전 취임 1주년을 맞은 시립극단 예술감독이 ‘달빛 결혼식’을 광주 브랜드 공연으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놀랐다. 광주를 대표하는 광주시립극단이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인가 묻고 싶어졌다. ‘광주’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브랜드 공연’이 될 수는 없다. 아주 대대적인 개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칼럼 제목 ‘나는 브랜드 공연이 싫다’는 광주를 대표하는 의미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10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언급되어 온 ‘브랜드 공연’은 소재와 주제가 작품을 짓누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예술적 상상력이 발휘하는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 광주의 브랜드 공연은 천편일률적이다. 5·18, 아니면 정율성이다. 솔직히 13년간 수십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정율성의 문화 브랜드화 작업 성과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이다.

광주는 2018년 5억 원, 올해는 18억 원을 투입해 ‘님을 위한 행진곡 세계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억 원이 투입되는 창작 관현악 사업은 공모전 개최와 음악회 그리고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등이 김대성 곡 ‘민주’를 연주하는 데 쓰인다. 13억 원이 투입되는 뮤지컬 작업은 답보 상태다. 12월 갈라 공연, 내년 5월 공식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이지만 제작사와 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당연히 대본과 작곡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어 작품이 제대로 나올지 걱정이 앞선다.

광주시가 강조하는 ‘광주다움’은 시정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게 가장 좋다. 광주다움, 브랜드화에 경도돼 ‘끼워 맞추기식’으로 제작되는 작품은 생명력이 없다. ‘광주’라는 소재에 매몰되면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 작품의 등장은 그만큼 어려워진다.

얼마 전 부산발(發) 창작 뮤지컬의 서울 입성 소식에 당연히 ‘부산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부산문화재단 지원 사업에 선정돼 2년간 개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은 1970년 미국 노동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1976 할란 카운티’였다. 연출자의 변은 이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 정의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2020년은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이 되는 해다. 숱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5·18 코미디극’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진정성’이 꼭 엄숙함과 무거움만을 동반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