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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임지현 첨단우리병원 원장] 당신은 안녕(安寧)하십니까?
2019년 06월 27일(목) 04:50
뒤돌아 볼 틈도 없이,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해 내면서 살다 보니 어느덧 필자도 불혹의 나이를 넘게 되었다. 길지도, 그렇지만 짧지도 않은 마흔을 넘기면서 이제 나머지 남은 절반의 일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끔 생각해 볼 여유도 갖는다. 너무 철학적인 그리고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정말 중요하고도 많은 현자들이 고민했던 질문, ‘우리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사색해본다.

내가 소명으로 하는 일은 사람들을 만나서 불편함과 고통을 들어주고, 그것을 같이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갓난 아이부터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까지, 우리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끊임없는 신진대사가 진행되는 생물이기 때문에, 각각의 세포 주기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이면서 수많은 변화를 나타낸다. 특히 발달과 성장이 이뤄지는 유아·청소년 시기에는 놀라운 자연 치유력과 회복력을 보이고, 슬픈 사실이지만 인생의 후반기에는 정반대로 무슨 치료를 하더라도 반응이 늦고 의사가 원하는 만큼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를 통틀어서 표현하면, 모든 지구상 생명체의 공통적인 반응은 결국 본인의 생명을 영원히 지속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지속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세포 주기의 한계가 분명히 있는 생명을 계속 연장하려는 노력은 사실 안 되는 것을 해보려는 비현실적인 이상과 꿈에 가깝다.

언어를 배우면서 어렸을 때는 ‘안녕하세요’를 그냥 인사할 때 쓰는 말로 외우고 무의식적으로 썼다. 그런데 안녕(安寧: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하다)의 뜻을 생각해보면, 정말 이것이 왜 인사말로 쓰는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느낌이 든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길을 지나가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서도, 그리고 서로 헤어질 때 우리는 ‘안녕하세요’를 계속 줄기차게 사용한다. 사실 잘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본 검색어 1위가 뉴스에서도 가장 중요한 헤드라인이 되는 것처럼,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 ‘안녕’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말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귀납적 결론이다.

다시 생명체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의학적으로 ‘안녕’은 항상성(恒常性 : 언제나 변하지 않는 성질)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춘하추동에도 체온이 36.5도로 일정한 것처럼 항상성이란 외부의 환경이 계속 변화하지만, 그러한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생명체 내부는 계속 유지되는 성질이다. 이렇게 항상 그대로 지속되면 편안할 뿐만 아니라 건강한 것이고, 외부의 변화가 있으면 생명체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극에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반응한다. 인생에서는 난관과 고통,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활동이 치료인 것 같다.

그런데 필자가 진료실에서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절대 진리는 결국 환자가 통증 없이 편안한 ‘안녕’이 임상적 치료의 목적과 목표이고, 이것이 인생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을 만나 뵐 때 더욱 느껴지는데, 고관대작이든 평범한 소시민이든, 현재 재산이 많든 적든지 각자의 조건들은 건강 앞에서는 다 소용이 없다. 개개인의 행복에 가장 절대적인 필요 조건은 몸의 ‘안녕’이다. 그 무엇으로도 바꾸거나 살 수 없는 건강과 안녕은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

오늘도 아침에 잠을 깨면서 새날을 시작한다. 특별하게 좋은 일이나 축하할 일이 없더라도 안녕히 눈을 떠서 하루를 보낸다면 이게 행복한 일이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온전히 나의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오늘 하루도 안녕히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오늘도 진료실에서 그리고 병실에서 아프신 환자분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분들이 ‘안녕’하시고 이를 통해 행복하시길 항상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