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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언론인] 무엇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가
2019년 06월 18일(화) 04:50
온 산의 푸르름이 신록에서 녹음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여름의 초입, 때맞추어 모처럼 친구들과 두물머리 세미원(洗美苑)에 놀러 갔다.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觀水洗心)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觀花美心)는 옛글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세미원에는 여기저기 연못에 동서양의 가지가지 연꽃이 심어져 있었다. 불가(佛家)에서는 흙탕물 속에 있으면서도 항상 그 몸이 깨끗한 것(處染常淨)을 기리고, 유가(儒家)에서는 멀리 있어도 그 향기가 더욱 맑은(香遠益淸) 군자의 꽃으로 기림을 받은 품격 높은 꽃이다.

눈을 들어 강 건너 운길산을 바라보면 다산이 자주 들렀다는 수종사가 아스라이 보이고, 두물머리 언저리에 와서 유달리 질펀해진 남한강의 그 넉넉하고도 느린 흐름 저편 낮은 산 아래쪽에는 다산의 생가와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쪽의 경관은 겸재 정선이 화폭으로 남길 만큼 아름답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강 사이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어 서로 만나 합치면서 아침에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운해를 헤치고 나오는 일출이 장관이라고 한다.

이런 경관 속을 거닐면서 조국의 산하는 철 따라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라 되어가는 꼴은 이게 뭐냐는 한탄이 누구의 입에선지 튀어나왔고, 이로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행 모두가 시무룩해지기 시작했다.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면서 시작된 점심 자리는 어느새 이 나라 정치판 특히, 문재인 정부 성토장으로 변해 갔다.

스스로 정한 정부의 고위 공직 후보자 배제 기준인 병역기피, 세금탈루, 투기·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운전, 성 관련 범죄 등. 그 어느 것 하나에도 걸리지 않을 고위 공직자가 단 한 사람이나마 있을까. 그렇다고 그 누구 한 사람 나는 결코 떳떳한 사람이 못 된다고 스스로 사퇴한 사람이 있었나. 개혁은 높은 도덕성으로만 그 정당성과 추진력을 가질 수 있는데 도덕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명분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혁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문재인 정부의 인사 문제를 가장 먼저 도마에 올렸다.

처음부터 ‘깜’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장관으로 임명되고 그들이 추진하는 말 많은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 근무제, 성급한 탈원전, 돈 풀어 현금 복지 등 졸속한 데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정책들, 거친 세금 씀씀이를 보면서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지를 국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런 정부가 과연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을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며, 저출산 고령화 같은 인구 문제와 교육 문제, 앞으로 무엇으로 이 나라 이 국민이 먹고살 것인지 등 장기적인 국가 과제를 풀어 갈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공무원 17만 명 증원 계획이 이루어지면 이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와 연금이 모두 국민 부담이자 다음 세대의 부담이 될 것인 즉, 문재인 케어 등 생색내는 일은 저희들이 하고 부담은 차세대에 넘기는 행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외교·안보·경제 정책 등 과연 이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자유를 지켜 줄 능력이 있는 정부인가, 과연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견인하고 지켜 갈 철학이나 방안이 이 정부에 있는지 등에 대해 원초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분열과 갈등을 일으킨 현충일 날의 난데없는 김원봉 얘기, 노무현 정부 말기 때의 그것을 방불케 하는 정권 실세라는 사람들의 행보, 그들만의 잔치인 낙하산 인사 등 불평·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 가운데는 영부인이 행사 때 반 발짝만 대통령의 뒤에 서거나 뒤따라 주는 모습이었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있었다. 어쨌든 유쾌하게 출발한 우리들의 나들이는 어느덧 우울하게 끝나고, 오는 길은 침묵 속에 무겁기만 했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출발할 때부터 많은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갖고 있었다. 반듯하고 맑은 남자, 겸손하고 선한 인성과 진정성을 지닌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 아니었던가. 대통령이 달라졌는가. 나들이에서 돌아와 2년 전 그의 대통령 취임사를 다시 읽었다. 역시 감동적인 취임사였다. 그러나,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드는 의문들. 지금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하고 있는가. 과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웠는가. 그 초심은 지금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