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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권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 다시 유월에 서서
2019년 06월 07일(금) 04:50
“호헌 철폐, 전두환 독재 타도” 32년이 되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 때 외침이 지금도 생생하다. 1980년 광주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투쟁은 7년간 지난한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1987년 전두환은 4·13 조치를 발표해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다시 뽑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때 광주가 분연히 일어난 것이다. ‘동장에서 대통령까지 우리 손으로’ 뽑겠다는 의지로 성직자(신부·목사)들이 단식을 시작했다. 필자는 당시 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 회원으로서 1987년 4월 27일 단식을 함께 했다. 당시 성명서 제목은 ‘직선제 개헌을 위한 단식 기도를 시작하며’이다. “성서적 진리와 신앙 양심에 따라 이 땅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민주주의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지난 한 해 동안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직선제 요구를 몸으로 체험하며 기도와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현 정권은 4·13 발언을 즉시 철회하고 물러갈 것과 미국은 한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기도와 단식을 했다.

필자는 단식 열 하루 째가 되던 1987년 5월 7일 설교를 했다. 고린도전서 15:12-19절 말씀을 본문으로 ‘예수 부활과 역사 부활’에 대해 설교했다. “총칼로 광주 민중을 학살하고 장기 집권을 획책하는 4·13 발언은 다시 우리가 의의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다. 부활에는 ‘일어난다’ ‘봉기’의 뜻이 있다. 구원과 해방의 프락시스(실천)다. 오늘 우리는 광주에서 바로 여기 YWCA 6층에서 단식으로 일어섰다. 이것은 전주로, 부산으로, 대구로, 인천으로, 서울로 번졌다. 87년 5월은 민주주의 생일이 될 줄로 믿는다. 국민에게는 주권을, 이 땅에는 평화를 위해서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다. 그 불은 결코 방화를 하며 각목과 돌멩이와 화염병으로 오는 불은 결코 아니다. 그 불은 성령의 불이며, 이 땅에 평화를 갈망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의 뜨거운 가슴의 불이다. 이 뜨거운 가슴에 불이 붙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신 우리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진정으로 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지며 이 땅에 평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처럼 광주에서 시작된 성직자들의 단식 기도회가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마침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어서 박종철 열사를 비롯한 이한열 등 수많은 열사의 고귀한 죽음과 목숨을 건 투쟁, 군부 통치를 종결지으려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마침내 6월 항쟁은 의미 있는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2017년 촛불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6월 항쟁은 깨어 있는 시민의 비폭력 실천이자 시민의 자주 자치의 실천이었으며 이는 시민의 대동 세상으로 연계됐다. 그리고 대동 정신은 광주 민중 항쟁의 정신으로 계승됐다. 비폭력의 저항과 주먹밥으로 함께하는 대동, 헌혈로 함께한 생명 나눔의 공동체 정신이다. 바로 ‘광주다움’의 요체다.

필자는 최근 그 광주다움을 전해 준 한 사람을 기억한다. 5·18 전도사로 불리는 고 서유진 님이다. 그는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이후 박정희 유신 반대 운동을 펼쳤고 1980년 광주 민중 항쟁의 진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 음모로 미국 망명 길에 올랐을 때 민주화 운동 세력들과 함께 한국의 군사 독재 참상을 고발하고 광주 민중 항쟁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백악관 앞 시위 등을 펼쳤다. 이후 민주 정부 시절 캄보디아, 스리랑카, 미얀마 등 27개 나라에 이르는 아시아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한국과 비슷한 군부 독재 국가들을 찾아가 광주의 5·18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아시아 인권 헌장’ 선언과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이토록 오로지 광주를 위해서 살다가, 그는 2019년 5월 16일 미국 자택에서 별세(77세)했다. 그 분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지난 6월 1일 광주 망월동에서 ‘세상 어디라도 그대 머문 곳이 광주였습니다’라는 주제로 추모제와 안장식을 거행했다. 그때 필자는 ‘5월 증언자’라는 추모시를 바쳤다.

“광주 어디 있는가/ 꽃만 봐도 서러운 그날/ 눈물이 앞을 막아 빛을 볼 수 없을 때/ 상처와 아픔 분연히 떨치고/ 홀연히 우리 앞에 나타난/ 민주 평화 인권을 일깨워 준 당신/ 아아 그대 이름/ 서유진//… 미완성의 혁명을 숙제로 남기고/ 하나님 집으로 돌아간/ 광주정신/ 그대의 이름 /서유진 // 다시 유월에 서서, 저 유월의 바람으로 통일의 그날까지 광주는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