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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화 원류를 찾아서] <81> 10부 ‘네팔’ (2) 산이 만들어낸 문화
히말라야에서 만난 마을 앞 오색천 ‘타르초’
마을 보호해 준다 믿었던 우리 문화와 닮아

등반 전 신에 올리는 제사, 우리민족과 비슷
파괴의 신 ‘시바’ 설인 ‘예티’ 설화도 친숙해
2019년 05월 02일(목) 00:00
네팔 포카라 사랑코트 중턱 길가에 세워진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히말라야의 산 민족들이 거주하는 마을 주변에서는 오색 천을 달아놓은 ‘타르초’와 ‘룽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마을 입구 돌을 쌓아 ‘서낭당’을 만들고 주변 나무에 오색 천을 달았던 것과 비슷하다. /네팔 포카라=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히말라야를 보기란 쉽지 않다. 네팔의 우기가 시작되는 4월에는 더 그렇다. 구름이 없고 비가 오지 않는 날, 한달에 한번 정도가 고작이다. 하늘과 맞닿은 높은 산 히말라야는 평상시 그 자태를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더 신성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히말라야의 꼭대기는 늘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있다. 히말라야라는 이름도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가 결합된 말이다. 히말라야 산맥에 둥지를 튼 산의 민족들은 생김새나 삶, 문화 모두 백두산 아래 우리 한민족과 상당부분 닮아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서낭당이 마을을 보호해준다고 믿으며 입구 앞에 돌을 쌓아 ‘서낭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옆 나무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하얀색의 오색 천을 달아놓곤 했다.

히말라야 산 민족들의 마을에서도 이 오색의 천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천을 만국기처럼 걸어놓는 것을 ‘타르초’(tharchog), 우리나라 솟대처럼 장대 위에 깃발형태로 걸어 놓는 것을 ‘룽다’(lungda)라 부른다. 네팔의 산 민족은 마을 초입이나 벼량 등에 긴 장대를 세우로 경전을 적은 오색의 천을 달며 안녕을 기원했다.

심마니들이 산에 오르기 전 산신령에게 제를 올리는 것처럼, 히말라야 고산등반 안내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셰르파(sherpa) 민족 역시 등반에 앞서 빼놓지 않고 산신에게 제를 올리고 있다.

네팔의 사람들은 히말라야에 신이 살 것이라 여겼다. 신령한 산은 그 아래 인간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우리가 백두산을 신성한 산으로 여기고, 그리스 사람들이 올림푸스산에 신들이 모여 살 것이라 여기며 신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국민의 80%가 힌두교도인 네팔 사람들은 그곳에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 중의 한명인 파괴의 신 ‘시바’(Shiva)가 수행 중이라고 한다.

힌두교의 창세신화 ‘우유바다 휘젓기’를 보면 선한 신 데바(Deva)의 왕 ‘인드라’(Indra)가 시바신의 화신인 ‘두르바사’(Durvasa)에게 선물 받은 스리(Sri·행운이 깃든 꽃다발)를 떨어뜨리고 만다. 그 꽃다발은 두르바사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인드라가 꽃다발을 떨어뜨린 사실을 안 두르바사는 “이제부터 모든 데바들은 힘을 잃을 것이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그 저주로 결국 데바들은 힘을 잃어갔고 악한 신인 아수라(Asura) 군단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몰살 위기에 처하자 데바들은 힌두교 3대 신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비슈누’(Vishnu)는 이들에게 1000년간 생명의 바다인 우유바다를 휘젓고, 그후 거기서 나오는 영생의 약 ‘암리타’(Amrit)를 먹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데바들의 힘만으로는 우유바다를 휘젓기 역부족이었다. 아수라들에게 함께 영생하자며 도움을 청했다. 아수라와 데바는 신들이 사는 히말라야의 ‘만다라’(Mandara) 산을 뽑아 회전축으로 삼았고, 머리가 다섯 개 달린 시바의 뱀 ‘바수키’(Vasuki)로 만다라 산을 휘감았다. 비슈누는 거북이로 변해 바다 속에서 만다라 산을 떠받쳤다.

그렇게 이들을 모두가 힘을 합쳐 우유바다를 저었다. 그 과정에서 만물들이 창조됐는데 가장 먼저 나온 창조물이 세상을 파괴할 만큼 강한 독성을 가진 ‘할라할라’(Halahala)였다. 독이 너무 강해 대양을 젓는 일을 포기하고 자칫 세상이 위험할 지경에 놓였을 때 시바가 이 독을 스스로 삼켰다.

당시 시바의 부인 ‘파르바티’(Parvati)는 시바의 목을 졸라 독이 목에만 머물 수 있도록 하면서 시바를 살렸고, 덕분에 시바의 목은 푸른 빛을 띄게 된다. 힌두교를 믿는 네팔 사람들은 시바가 독으로 인한 열기를 식히기 위해 아직도 추운 히말라야 꼭대기에 살며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포카라 산악박물관에 전시된 설인 ‘예티’모형.
웅장하고 신령한 산도 때로는 무서운 존재였다. 쉬이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눈사태를 가져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두려운 산’은 그와 얽힌 민담도 만들어냈다.

그중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대표적인 전설은 설인(雪人) ‘예티’(yeti)의 이야기다. 예티는 전신이 길고 검은 털로 덮여 있어 흡사 원숭이와도 닮았다고 한다. 발자국이 발견되고 목격자들의 이야기는 종종 들리지만 실제 존재하는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산 사람들에게 예티는 두려운 존재였다. 짐승처럼 빠르며 무서운 울음소리를 냈다. 산에서 살며 야크(yak)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 야심한 밤이면 간혹 민가로 내려온다고 알려져 해가 진 뒤에는 함부로 집 밖을 나서기도 힘들게 했다.

산 민족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히말라야 산맥에는 수많은 예티들이 살았다. 예티들은 하루종일 마을 주민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밤이 되면 산에서 내려와 똑같이 흉내를 냈다. 덕분에 농작물은 예티에게 밟혀 고사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사람들은 예티의 이런 행동을 막을 방법을 찾았다.

사람들은 예티가 지켜보는 한낮 술을 마시고 취한 듯 연기하며 나무 칼로 ‘가짜 싸움’을 했다. 저녁이 되기 전 독한 술과 날카로운 칼을 그곳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 되자 예티들은 어김없이 그곳을 찾아 내려고, 사람 흉내를 내며 술을 마시더니 금새 취했다. 그리고 칼을 들고 서로 죽을 때까지 싸웠다. 예티가 모두 죽자 마을 사람들은 평화로워질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민담 속에 나오는 호랑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에서도 호랑이는 예티처럼 무서운 존재지만 인간의 재치에 어설프게 당하고, 그 끝에 죽음을 당한다. 또 한반도 소백산맥 이남지역에서 전해져오는 ‘장산범’과도 닮았다. 장산법은 온몸이 흰털로 뒤덮여 있고 산속에서도 빠르게 움직이며 희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산은 험준하고 위험했다. 자칫 아이들이 장난 삼아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을 수도, 산짐승에게 해코지를 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서운 장산범이나 예티의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줬을 수도 있다. 민담과 전설은 그 민족의 생활, 풍속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산이 만들어 낸 네팔의 문화가 우리와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일지 모른다.

/네팔 포카라=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