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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 동강대학교 교수] 우리 안의 가장 슬픈 사월의 그림 - 강요배의 ‘젖먹이’
2019년 04월 24일(수) 00:00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태양 아래 모든 본질은 같다’라는 깃발 아래 모든 것을 동일시하고 동일의 규정 안에 오도록 요구해 왔다. 그래서 ‘우리’라는 공동의 집단성을 만들고, 우리가 아닌 남을 다름이 아닌 차별의 배제의 대상, 비문명, 야만성, 폭력성 등으로 규정해 제거할 대상으로 삼았다. 더욱이 우리 안의 우리가 아닌, 남과 같은 우리를 남으로 규정하거나 우리 안으로 동일화라는 미명 아래 폭력으로 굴종시켰다. 남의 삶의 규칙을 공유할 때 낯선 남은 소멸하지만 우리 역사는 긍정적 방식으로 남의 타자성을 규정하지 못하고, 남에게 자기 삶 규칙을 강요하기 위해 폭력, 억압, 파괴, 고통을 정당화했다. 이런 우리 안의 남을 배척하고 폭력화시킨 두 개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우리 안의 가장 슬픈 사월의 그림을 보면서 역사에 응답해야 할 우리가 되고자 한다.

‘동백꽃 지다’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을 설명하거나 글을 그림으로 그린 그림책이 있다. 동백꽃은 지는 것이 아니라 낙화로써 한 잎 두 잎 떨어져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가 통째로 툭하며 낙하하여 땅으로 떨어진다. 이 책은 자국민을 3만 명 이상 학살한 제주 4·3을 다룬 것으로 당사자 34명의 증언을 채록한 이야기와 이를 기초로 한 그림은 강요배 화백이 그렸다. ‘동백꽃 지다’는 강 화백이 1992년에 발표한 전시회의 제목이며, 이 전시는 ‘제주 4·3 항쟁’을 다룬 그림 50점으로 당시 제주의 비극적 고통을 보여줬다.

그는 당시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제주민의 일상사와 당시의 처지를 생생하게 그렸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 ‘빈젖’과 ‘젖먹이’는 당시의 처참함과 죽음을 단칼의 단면처럼 함축된 비애와 눈물로 보여준다. 그림 ‘젖먹이’는 북촌마을 김석보과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담아 표현했다.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강 화백은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어미와 그 어미 위에 엎드려 젖을 빨고 있는 아이, 그리고 죽은 여인을 앞에 두고 울분하는 사람의 모습을 4·3의 상징적 표상으로 그림으로 옮겼다. 총에 쓰러진 어미의 처참한 모습은 3만의 제주의 죽음을 나타내고, 이유 없는 폭력의 비참함을 모른 채 어미의 젖을 찾는 어린애는 반 이데올로기의 순진함과 미래의 생명력으로 희미한 희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울분과 분노와 고함의 외침이 형태와 색의 이미지를 압도해 버린 울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비탄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이 그림은 보는 모든 사람은 역사의 골짜기에서 어둠의 어둠과 눈물의 눈물을 동시에 젖게 하고, 눈물을 닦아낼 손조차 바닥으로 처져 온몸이 눈물로 젖는다.

4·3을 통해 지배자는 두 진영을 가르는 전리품을 얻어 헛된 세계사적 진영 논리에 동참하게 된다. 이제는 이런 이분법 논리에 벗어나 역사적 소추를 통해 다시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생하는 충과 빨판을 가진 거머리들의 논리에 끝없는 질문과 응답을 요구한다.

이 그림 속 우리의 과거는 구원할 수 있는 어떤 은밀한 지침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통곡의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역사의 촉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는 침묵의 역사 동굴 속에 희미한 메아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과거 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연결된 은밀한 자침서의 열쇠가 열리게 된다.

따라서 역사는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우리의 모든 세대와 연결되고, 메시아적 힘이 함께 주어지기 때문에 역사적 과거는 연대표에 고정된 화석이 아니라 힘을 요구하고 응답하게 하는 천둥소리이다. 그래서 우리 안의 남을 우리 밖의 남으로 명명하여 배제하고 배척하거나, 우리 안에 우리로 동일화 시켰던 폭력적 과거 역사는 우리에게 메시아적 지침서를 펼쳐 행동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