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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전 다산연구소 소장] 삼일 정신, 100년의 꿈
2019년 04월 16일(화) 00:00
3월 1일 해 질 녘, 창밖의 태극기를 내리면서 생각했다. 하루론 부족하지 않나. 삼일 운동 100주년인데, 올해 1년 정도는 내내 게양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신을 되새겨 보는 것이겠지만. 최근 발간된 두 권의 책이 우선 주목된다. 역사학자 박찬승 교수의 ‘1919’와 헌법학자 한인섭 교수의 ‘100년의 헌법’이 그것이다.

1919년 3월의 만세 운동은 몇몇 영웅의 작품이 아니었다. 상하이·도쿄 등 해외와 국내에서 긴박한 준비 과정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헌신이 있었다. 독립 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 직원 인종익은 나중에 체포되어 경찰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전혀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 때가 왔기에, 그에 맞는 적절한 시도를 한 것뿐이다. 처음부터 성공을 기대하고 벌인 일도 아니다. 이번에 우리가 좌절하면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사람들이 나올 것이고, 100명을 죽이면 또 다른 100명이 나올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한 번 터진 물길은 계속해서 흘러넘칠 것이다.”(‘1919’에서 재인용)

나라를 되찾고자 한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후에 주창된 민족 자결주의에 고무되었지만, 쉽사리 독립을 이룰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기를 놓치지 않고 무언가 독립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삼일 만세 시위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의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대한민국을 건립하고 임시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1948년의 제헌 헌법 전문의 ‘기미 삼일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란 표현이 이를 확인해 준다. 1919년에 꾸었던 꿈은 이후 독립 정신과 헌법 정신의 근간을 이루어 작동해 왔다. 그 꿈은 ‘독립 선언서’ 이외에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해 4월 10일 상하이에서 임시 의정원을 열어, 4월 11일 새벽에 ‘대한민국’ 국호를 결정하고 ‘대한민국 임시 헌장’ 10개 조항을 선포했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은 지금의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규정으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제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 정부가 임시 의정원의 결의에 의해 이를 통치함’이고, 제10조는 ‘임시 정부는 국토 회복 후 만 1년 내에 국회를 소집함’이다. 10여 년 전 의회 설립 좌절을 딛고 섰다. 또한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으로, 신분제적 질서를 부정하고 있다. 그밖에 자유권, 참정권 그리고 교육·납세·병역 의무 등을 정하고 있다.

3·1운동이냐, 3·1혁명이냐. 어떻게 부르든 그 혁명적 성격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시대가 혁명의 시대였고, 생각이 혁명적이었다. 19세기 ‘시대 3부작’을 쓴 에릭 홉스봄은 제1 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의 약 15년 동안이 서구 나라들엔 ‘아름다운 시대’였지만, 지구의 더 넓은 다른 지역에선 ‘혁명의 시대’였다고 파악했다. 오래된 제국이었던 중국,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제1 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유럽 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러시아와 합스부르크 왕가가 무너졌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1918년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바야흐로 제정의 시대에서 공화정의 시대로 바뀌고 있었다. 이를 대한민국의 선각자들은 주목했다.

불과 10년 전에는 왕국의 백성이요 제국의 신민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입헌 군주제나 귀족 공화제를 말하지 않고, 민주 공화제를 말했다. 왕국이나 제국을 말하지 않고, 민국을 말했다.

독립 선언서에서, 서구 제국주의를 모방하여 변신에 성공한 일본의 행태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라 규정했다. 조선 독립은 조선인만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요, 동양 평화를 이루어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삼일 운동은 평화 시위를 원칙으로 하여, 그 방식 또한 혁명적이었다. 1919년을 기점으로 우리는 그 전과 다른 꿈을 꾸었다. 민주 공화국의 꿈, 자주 독립의 꿈, 인류 평등과 평화의 꿈 등. 100년의 세월 동안 많은 성취도 있었지만 아직 미흡한 면도 없지 않다. 함께 이루어 왔고 함께 이루어야 할 꿈, 그 꿈을 다시 상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