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 생각’] 토종 목련의 슬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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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 토종 목련의 슬픈 운명
2019년 04월 11일(목) 00:00
목련의 계절이다. 이 봄에 피고 지는 꽃 치고 반갑지 않은 꽃이 없지만, 목련만큼 우아한 자태로 우리 곁에 봄이 다가왔음을 알려 주는 꽃도 없다. 잎 돋기 전에 탐스럽게 피어나는 하얀 꽃이야말로 이 봄을 싱그럽게 맞이하게 하는 대표적인 봄맞이꽃의 상징이다.

목련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 가운데 하나다. 목련이 처음 이 땅에 나타난 것은 1억4천만 년 전으로, 공룡 시대의 화석에서도 목련의 존재가 확인된다. 목련이 오래된 식물이라는 증거 가운데 하나는 그의 꽃술에 있다. 목련꽃이 이 땅에 처음 피었을 때에는 벌도 나비도 없었다. 그때 목련이 꽃가루받이를 위해 유인한 곤충은 딱정벌레 종류였다.

목련은 딱정벌레가 드나들며 꽃가루받이를 편하게 하도록 자신의 꽃술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꽃술 모양은 목련을 다른 식물과 구별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목련과에 속하는 모든 식물의 공통적 특징이다. 아울러 딱정벌레가 꽃가루받이를 도와준 오래된 ‘화석 식물’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목련은 세계적으로 9백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목련은 우리 토종 목련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백목련과 자목련이다. 관상용으로 새로 선발한 품종이 최근에 조금 보태지기도 했다.

목련과 식물 가운데 아무런 수식 없이 ‘목련’이라고만 불러야 하는 토종 목련이 있다. 얄궂게도 우리 토종 목련의 학명에는 ‘주먹’을 뜻하는 ‘고부시’라는 일본어 이름이 붙었다. 한라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나무인데, 이 나무를 처음으로 세계 식물학계에 보고한 사람이 바로 일본의 식물학자였고, 그가 자신의 모국어로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우리 토종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말 이름을 갖지 못했다.

우리 토종 목련의 꽃은 지금 우리가 많이 키우는 백목련과 꽃 모양이 조금 다르다. 특히 꽃이 피어날 때의 모습이 그렇다. 우리 목련은 꽃잎 여섯 장이 활짝 피어나서, 평평할 정도로 넓게 펼쳐진다. 대개 반쯤 입을 연 백목련 꽃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같은 우리 목련 꽃은 생경할 수 있다. 꽃잎을 곧추 세우지 않고, 늘어져 흐느적거리기 때문에 맥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정하기 어렵지만, 우리 목련꽃의 꽃잎이 성글게 피어난다는 점에서 중국산 백목련에 비해 조형미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이 땅에 자리잡고 살아온 나무이건만 우리의 사랑을 그리 많이 받지 못한 이유다. 그저 우리 것이니 아름다운 꽃이라고 과장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어쩌면 오래도록 중국산 백목련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우리 토종 목련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결국 우리의 토종 목련은 화려한 꽃을 피우는 목련 종류에 밀려 우리 땅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 식물이 되고 말았다. 단순히 조형미 때문에 우리 것을 우리 스스로 내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생물이 멸종하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의 개입에 의해서다. 농약이라든가 도시의 매연 등은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다. 그러나 우리 토종 목련의 경우는 거꾸로 사람의 지나친 무관심으로 사라져 가게 된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장 마리 펠트는 자신의 대표 저술인 ‘위기의 식물’에서 “현재의 소멸 리듬이 계속된다면 25만 종의 고등 식물 중에 6만 종이 2050년에 멸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30년 정도 뒤에는 지금 우리의 봄을 화려하게 밝혀 주는 식물 가운데 4분의 1이 시나브로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우리 땅에서만 자라는 고유종일수록 생육 공간의 범위가 좁아 멸종의 위험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조금 덜 아름답다고 해서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한 우리 식물을 우리 스스로 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토종 식물을 지키는 건, 곧 우리의 오래된 보금자리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평안하게 잘 사는 곳이야말로 사람도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곳이고, 나무가 죽어가는 곳이라면 사람도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는 평범한 이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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