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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 먼 훗날의 미세먼지 생각
2019년 03월 14일(목) 00:00
‘나무’를 키워드로 검색되는 뉴스가 부쩍 늘었다. 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이는 순전히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에 꽁꽁 묻혔던 잿빛 겨울에 이어, 찬란해야 할 봄조차 우울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무 심기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다. 나무 한 그루가 한 해 동안 평균 에스프레소 한 잔 분량인 35.7그램의 미세먼지를 흡수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건 대략 40년쯤 자란 나무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며 새로 심은 나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미세먼지 측정 실험 결과도 소개되곤 한다. 자동차 도로의 미세먼지 상태는 ‘나쁨’이지만, 대여섯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 바로 옆의 교통섬에서 측정한 결과는 ‘보통’으로 바뀐다. 나무가 더 많은 도시숲에서의 결과는 ‘좋음’이다. 나무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결과다. 공기 정화 식물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는 뉴스가 뒤를 잇는가 하면, 언론은 앞다퉈 공기 정화 효과가 높은 식물을 소개한다.

나무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레 늘어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로 뿌연 먼지에 휩싸인 봄을 맞을 때마다 그랬다. 그때도 사람들은 황사를 막으려면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했다. 맞춤하게 식목일이 들어 있는 시기여서 누구라도 나무를 이야기하기 좋았다. 그러나 비 잦은 여름 되면 사람들은 나무를 잊었다. 온 땅을 누렇게 뒤덮던 황사가 사라지는 것보다 빠르게 나무에 대한 관심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다시 황사가 다가오는 이듬해 봄이면 잊었던 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어이없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봄의 황사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잦아들지 않는 미세먼지가 문제다. 봄에만 나타나던 황사와 달리 미세먼지는 한겨울에도 바람 적은 날에는 우리 산과 들을 삼켜 버린다. 파란 하늘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거의 방독면을 닮은 마스크로 무장한 뒤에야 거리에 나선다. 맑은 공기가 급해졌다. 여러 방안이 떠오르고 회자하지만, 무엇보다 나무를 심는 일만큼 미세먼지를 막는 데 효과적인 대책이 없다는 게 하릴없는 결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지금처럼 미세먼지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내내 이어진다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무성한 이야기의 양과 실제로 나무가 심어지는 양이 비례하지 않으리라는 건 그 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미세먼지 흡수와 같은 실용적 이유만으로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면 또다른 실용적인 이유로 나무를 베어 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 이를테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렇다. 심는 나무 못지않게 베어 내는 나무도 늘어난다. 이를테면 지자체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나무를 심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하고는 있지만, 그와 동시에 논과 밭에 그늘을 드리워서, 뿌리가 겉으로 드러나면서 도로를 파손해서, 상가 간판을 가리고 신호등을 가린다 해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이유로 사랑 받아온 나무를 베어 내는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은행나무의 여러 별칭 가운데에 공손수(公孫樹)라는 이름이 있다. 할아버지가 심고 손자가 열매를 얻는다는 뜻에서 붙인 의미 있는 이름인데 새로 심은 나무가 잘 자라서 열매를 맺어 소득을 주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은행나무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나무가 그렇다. 미세먼지 흡수 효과가 됐든, 열매를 얻는 효과가 됐든, 나무를 심어 실용적 이득을 얻으려면 수십 년 걸린다. 단발적인 관심으로는 나무를 통해 얻을 게 없다.

아무리 미세먼지 흡수 효과가 높은 나무라 해도 미세먼지를 흡수하는 효과를 얻으려면 적어도 40년은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미세먼지는 다시 이 땅을 덮을 것이다. 사람들은 입으로만 나무를 이야기하거나, 이윽고 나무에 대한 관심조차 서서히 잃어 갈지 모른다. 나무는 백 년을 내다보고 심어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의 근시안이 너무도 안타깝고 안타까운 날들이다.

<나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