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도다리쑥국
![]() |
“봄 도다리 가을 전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온 국민이 집단 최면에 걸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미디어가 관례처럼 봄이면 도다리를, 가을이면 전어를 다룬다. 대중의 입맛은 스스로의 결정보다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노출 빈도가 잦으니 자연스레 봄에는 도다리를, 가을에는 전어를 찾는다. 수요가 증가하니 봄에는 도다리의 몸값이, 가을에는 전어의 몸값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맛과 어획량으로 봤을 때 ‘가을 전어’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가을이 되면 맛도 오르고 잡히는 양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봄 도다리’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도다리라는 생선의 규정 자체가 모호하다. 생물 분류에서 가자미목에는 가자미, 넙치(광어), 서대 등이 모두 포함된다. 거칠게 말해 배를 바닥에 깔고 사는 탓에 타원형의 납작한 생선은 모두 가자미목에서 파생된 사촌지간이라 보면 된다. 이렇게 가자미목에서 파생된 생선은 무려 500여 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도다리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자미목 붕넙치과의 한 생선의 고유한 명칭. 둘째 강도다리, 문치가자미, 돌가자미 등 가자미목에 속하는 몇몇 생선을 부르는 명칭. 셋째 가자미를 총칭해 부르는 명칭.
이처럼 다양한 어종을 도다리라 부르고 어종과 환경에 따라 생태적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봄 도다리’의 정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봄이면 도다리라는 공식이 정착된 것은 지역적 변수가 결합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봄소식은 언제나 남쪽 바다에서 시작된다. 봄철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 자연스레 봄의 대표 선수가 된다. 1990년대 이후 통영은 수산업과 관광 산업의 규모 면에서 남해를 대표하는 항구가 되었다. 통영에서 도다리라고 하면 십중팔구 문치가자미를 일컫는다. 심지어 문치가자미를 진짜 도다리라는 의미에서 참도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문치가자미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산란을 한다. 때문에 12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를 금어기로 설정하고 있다. 산란기가 끝난 문치가자미는 봄이 되면 새살을 붙이기 위해 영양분이 풍부한 연안 가까이 붙는다. 어획이 시작되는 시기와 연안으로 붙는 시기가 일치하니 어획량이 늘 수밖에 없다. 잡히긴 많이 잡히는데 치어든 성어든 횟감으로 쓰기엔 살이 충분치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으려니 포를 뜨기보다는 뼈째 썰어 먹는 것이 더 어울렸다. 봄 도다리회하면 ‘뼈째 썰기’(세꼬시)가 공식처럼 정착된 이유다.
그런데 이런 이유만으로 도다리가 봄의 대표 생선이 되었다고 하면 뭔가 좀 아쉽다. 좀 더 극적인 스토리가 필요했다. 문치가자미가 올라올 즈음이면 통영에는 봄기운을 품은 해풍이 불어온다. 이때를 맞춰 통영의 크고 작은 섬의 들판에서는 마른 땅을 뚫고 봄소식을 알리는 쑥이 올라왔다. 바다에서 지천으로 올라오는 문치가자미와 땅에서 지천으로 캘 수 있는 쑥의 만남. 그 자체로 극적이고 그 자체로 봄이다. 예로부터 통영 사람들은 문치가자미로 끓여 낸 국에 들에서 캔 야들야들한 쑥을 듬뿍 올려 봄을 누렸다. 자칫 심심할 것 같은 생선국에 봄내 가득한 쑥이 곁들여지니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이 되었고, 도다리쑥국이 더해지니 ‘봄 도다리’는 하나의 서사로서 완벽한 구조를 갖게 된 셈이다.
도다리쑥국이란 명칭 때문에 이 음식의 주연이 도다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 도다리쑥국의 주연은 단연 쑥이다. 봄철 쑥국의 전통이 남아 있는 남해의 어촌 마을을 가 보면 비단 도다리뿐만 아니라 삼세기, 물메기, 용가자미, 조개 등 다양한 해산물로 쑥국을 끓인다. 살이 연하고 국을 끓였을 때 맑고 담백하며 감칠맛이 풍부한 생선이라면 무엇이든 쑥국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 주연인 쑥의 부드러움과 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건이다. 아울러 산지일수록 도다리쑥국의 맛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짧다. 이미 다 자라 거칠어진 쑥보다는 여린 해쑥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평생 나는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프랑스 출신의 유명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숑이 남긴 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봄은 짧고 봄 음식을 즐길 여유도 잠깐이다. 때로는 인간이 부지런히 자연의 시간을 쫓아갈 필요가 있다. 세상을 뒤덮은 미세먼지 때문에 우울하게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순간이다. 먼 훗날 돌이켜 보면 도다리쑥국 한 그릇을 먹었던 이맘때가 당신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일 수도 있다. 모쪼록 미세먼지 따위에 당신에게 찾아온 찬란한 봄을 잃지 않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맛 칼럼니스트>
한반도의 봄소식은 언제나 남쪽 바다에서 시작된다. 봄철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 자연스레 봄의 대표 선수가 된다. 1990년대 이후 통영은 수산업과 관광 산업의 규모 면에서 남해를 대표하는 항구가 되었다. 통영에서 도다리라고 하면 십중팔구 문치가자미를 일컫는다. 심지어 문치가자미를 진짜 도다리라는 의미에서 참도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문치가자미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산란을 한다. 때문에 12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를 금어기로 설정하고 있다. 산란기가 끝난 문치가자미는 봄이 되면 새살을 붙이기 위해 영양분이 풍부한 연안 가까이 붙는다. 어획이 시작되는 시기와 연안으로 붙는 시기가 일치하니 어획량이 늘 수밖에 없다. 잡히긴 많이 잡히는데 치어든 성어든 횟감으로 쓰기엔 살이 충분치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으려니 포를 뜨기보다는 뼈째 썰어 먹는 것이 더 어울렸다. 봄 도다리회하면 ‘뼈째 썰기’(세꼬시)가 공식처럼 정착된 이유다.
그런데 이런 이유만으로 도다리가 봄의 대표 생선이 되었다고 하면 뭔가 좀 아쉽다. 좀 더 극적인 스토리가 필요했다. 문치가자미가 올라올 즈음이면 통영에는 봄기운을 품은 해풍이 불어온다. 이때를 맞춰 통영의 크고 작은 섬의 들판에서는 마른 땅을 뚫고 봄소식을 알리는 쑥이 올라왔다. 바다에서 지천으로 올라오는 문치가자미와 땅에서 지천으로 캘 수 있는 쑥의 만남. 그 자체로 극적이고 그 자체로 봄이다. 예로부터 통영 사람들은 문치가자미로 끓여 낸 국에 들에서 캔 야들야들한 쑥을 듬뿍 올려 봄을 누렸다. 자칫 심심할 것 같은 생선국에 봄내 가득한 쑥이 곁들여지니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이 되었고, 도다리쑥국이 더해지니 ‘봄 도다리’는 하나의 서사로서 완벽한 구조를 갖게 된 셈이다.
도다리쑥국이란 명칭 때문에 이 음식의 주연이 도다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 도다리쑥국의 주연은 단연 쑥이다. 봄철 쑥국의 전통이 남아 있는 남해의 어촌 마을을 가 보면 비단 도다리뿐만 아니라 삼세기, 물메기, 용가자미, 조개 등 다양한 해산물로 쑥국을 끓인다. 살이 연하고 국을 끓였을 때 맑고 담백하며 감칠맛이 풍부한 생선이라면 무엇이든 쑥국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 주연인 쑥의 부드러움과 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건이다. 아울러 산지일수록 도다리쑥국의 맛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짧다. 이미 다 자라 거칠어진 쑥보다는 여린 해쑥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평생 나는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프랑스 출신의 유명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숑이 남긴 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봄은 짧고 봄 음식을 즐길 여유도 잠깐이다. 때로는 인간이 부지런히 자연의 시간을 쫓아갈 필요가 있다. 세상을 뒤덮은 미세먼지 때문에 우울하게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순간이다. 먼 훗날 돌이켜 보면 도다리쑥국 한 그릇을 먹었던 이맘때가 당신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일 수도 있다. 모쪼록 미세먼지 따위에 당신에게 찾아온 찬란한 봄을 잃지 않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