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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호 영암 신북성당 주임신부] ‘인간 소외’ 만연한 시대, 종교의 역할은?
2018년 12월 14일(금) 00:00
‘갑질’이나 ‘적폐’ 현상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우리가 산업 사회로 오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나 조직이 인간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런 인간이 주체로부터 소외되고 객체인 기계나 조직, 그리고 물질이 중심이 되는 현상을 ‘인간 소외 현상’이라 한다. 그래서 인간 소외는 산업 사회에서 본격화된 사회적 병폐이다.

‘인간 소외’는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인간성을 박탈당해 비인간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인간화는 사회적 제도나 정치·경제 체제 등 문명의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인간존재가 하나의 수단이나 이용가치로 전락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본질은 점점 설 곳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미 ‘사회 계약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라는 책을 사회정치적으로 저술한 장 자크 루소에 의하여 지적되었고, 그의 저서 ‘사회 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곳곳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시작하며 사회적 병폐를 고발하였다. 또한 칼 마르크스는 그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즉 인간 소외 현상은 오늘날 산업 사회와 자본주의사 회에서 나타나는 병리 현상인 것이다.

인간 소외는 존중 받아야 하는 인간 존재 자체를 무시한 현대 사회의 큰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 안에서, 또 우리들에 의해서 원인이 되고 발생하는 것일까? 그 답은 우리 각자가 살아왔던 습성이나 지녔던 생각을 반성하면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 소외 현상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내·외적으로 계급화와 차별화하려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하 관계를 고수하려는 계급화와 우리가 서로 틀리다는 차별화는 서로가 공존해 살아가는 사회적 공동체로서의 인간 관계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계급화의 골이 깊어져 있는데, 최근에 많은 이들의 공분을 일으켰던 ‘갑질’이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차별화는 서로를 분리시키려는 집단이기주의와 함께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을 배제시켜 버리는 불평등의 병폐적인 현상도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깊은 묵상이 필요하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높은 자리에 있다거나, 어떤 기업이나 조직의 대표를 한다거나, 재물을 많이 가졌다거나, 학식이 높다거나,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산다거나, 비싼 외제차를 탄다는 것이라면, 이미 그 삶에서 계급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의식의 삶을 사는 이는 타자를 우월과 열등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서로가 틀리다는 차별화 의식은 권위라는 가면을 통해 분리시키려고 폭력을 생산한다. 그래서 인간 소외 현상이 일어나 우리 사회의 병폐(또는 적폐)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 현상은 사회를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게 짓밟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의 역할은 인간 소외 현상을 발생시키는 계급화와 차별화라는 특권 의식을 분별하여 그 병폐를 고발하는 것이다. 예수가 당시 시대의 인간 소외 현상을 고발하고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예수는 사람을 위해 세상에 오셨고, 사람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왜냐하면 사람을 위함은 아버지 하느님, 곧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분께 희망을 두고, 그분처럼 사랑하며, 그분처럼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역할은 산업 문명의 폭력성과 시장 자본주의의 노예화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필요하다. 인간 소외 현상을 만들어내는 계급화하고 차별화하려는 시대의 병폐적 사조에 종교의 식별과 고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윤리형이상학의 정초’ Ⅳ-429) 임마누엘 칸트의 말은 우리 삶과 마음에 계급화와 차별화가 왜 발생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 존재 자체는 목적 자체이지 절대로 수단화(이용 가치) 되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자 칸트의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