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중현 화순 용현사 주지스님] 식빵 전문점
2018년 08월 17일(금) 00:00
작년 이맘때였다. 오랜만에 읍내 나들이를 했다. 볼 일을 끝내고 별생각 없이 읍내 거리를 걷다 보니 ‘식빵 전문점’ 이란 것이 새로 생겼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더니 갓 구운 빵 냄새가 가득했다. ‘빵집은 빵집인데 식빵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빵집’ 이렇게 생각해야 되나? OOO 제과점, 혹은 OOO 빵집이라고 해도 될 건데, 굳이 ‘식빵 전문점’을 앞에 붙인 것을 보면 ‘빵집은 빵집인데 기존의 빵집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빵집’,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 아마도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식빵은 빵 중에서 가장 기본이다. 그러니까 식빵 전문점은 곧 빵 전문점이란 말이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식빵 전문점이란 말에 어폐가 있다. 빵집이 빵에 충실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발상이다. 그러나 어떤 전문 제과점 같은 곳에 가면 식빵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다양한 종류의 빵은 물론 커피, 빙수, 우유, 사탕, 화과자 등 여러 가지를 팔고 있다. 요즘은 카페까지 겸하고 있다. 빵집이 더 이상 빵집이 아니다. 가게 이름은 분명 유명 브랜드 제과점인데 정작 빵을 찾으려면 한참동안 진열대를 뒤져야 한다. 이런 현실을 비판하며 기존의 빵집과 명확하게 선을 긋기 위해 ‘식빵 전문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모양이다.

그러나 그 식빵 전문점은 곧 나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그 가게는 여러 종류의 식빵을 취급했는데 나오는 시간이 각각 달랐다. 시간에 맞춰서 가지 않으면 원하는 식빵을 살 수 없었다. 그리고 보통 식빵보다 작은데 가격은 보통 식빵의 거의 두 배나 되었다. 그래서 몇 번 이용하다가 발길을 끊었다. 거의 일 년이 지나 우연히 그 식빵 전문점 앞을 지나치다 보니, 장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문을 닫은 지 꽤 되었단다.

신선한 호기심을 던지며 등장했다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읍내 식빵 전문점의 운명을 생각하다가, 문득 ‘식빵도 전문점 시대인데 그러면 사찰도 전문점 시대가 되어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기존 사찰은 기존의 빵집 같은 곳이다. 그 중에는 유명 브랜드 제과점처럼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꾸민 절도 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어수룩한 동네 빵집 같은 시골 절도 있다. 이름 있고, 경관 좋은 곳에 있는 사찰은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숙박업도 한다. 아예 ‘무당절’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절인지 무당집인지 분간하기 힘든 곳도 있다.

사찰의 기본에 충실하되, 기존의 사찰과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 그 무엇을 상상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당장 OO선원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OO선원같은 식의 작명은 사찰의 기본은 수행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선 수행에 충실하지 않은 기존의 사찰과 구별하기 위해 스스로를 굳이 선원이라고 명칭한다. 한편 명상센터는 수행이 아니라 명상이란 말을 선택하고 있다. 명상이란 단어가 풍기는 힐링, 치유, 기존 삶과의 조화 같은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명상 수행, 기 수련, 요가 같은 불교외적인 것에 정체성을 두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오늘날의 사찰은 물리적인 수행 공간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전통과 풍부하고 다양한 인적, 물적, 문화적, 예술적, 사상적 자원을 보유한 불자들의 공동체로 발전했다. OO선원이나 명상센터는 왠지 기존의 사찰과 차별하는데 치중한 나머지, 많은 것들을 놓치는 듯하다.

얼마 전,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사다가 파리바게뜨의 전신이 삼립제과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삼립제과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식빵 자동화 설비를 갖추어서 식빵을 대규모로 생산한 곳이었다고 한다. 파리바게뜨야말로 말 그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식빵 전문점’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바로 그 삼립제과 식빵이 파리바게뜨의 예전 모습이었던 것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 여성을 대하다가 뜬금없이 순박하고 풋풋한 시골 처녀를 만난 것처럼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최근 들어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한 파리바게뜨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홍보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서야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파리바게뜨처럼 세련되고 화려하게 변모했지만 정체성이 희미해진 기업형 빵집도 있다. 반면 신선하게 등장했지만 조용히 사라진 식빵 전문점도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등 떠밀려서 변해가는 세상이다. 오늘날의 불교 역시 변하고 있고 또 변해야 한다.

사찰의 앞길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처럼 불교의 최일선에 서있는 사람들이 개척해야 할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