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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시는 한잔의 소주와 지역 경제
[최재호 편집부국장·경제부장]
2018년 07월 04일(수) 00:00
지옥에서 돌아온 태극 전사(세계 57위)들이 지난 27일 열린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전차 군단(세계 1위)을 2대 0으로 침몰시켰다. 비록 16강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월드컵 원정길(1·2차전)을 생각하면 기적처럼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이다.

‘1% 희망’이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치른 세계 1위 독일과의 경기에서 우리 한국 팀은 세계 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친 ‘원팀’은 그동안 비판과 힐난 일색이던 여론을 단 하루 만에 칭송으로 바꿔 놓았다. 특히 그동안 여론의 뭇매를 맞은 신태용 감독을 비롯해 수비수 장현수와 김영권 선수 등은 기적 같은 반전으로 지옥에서 탈출, 당당하게 귀국했다. 부족한 실력과 부정적인 여론을 이겨낸 이들의 정신력과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축구 대표 팀의 기적 같은 반전을 보면서 지난 24일 새벽 멕시코와의 2차전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경기장은 만석에 가까웠다. 대부분 멕시코 응원단으로 그 숫자만 3만 명이 넘었다. 이들은 한국 팀이 공을 잡을 때마다 ‘우~’하는 야유를 보냈고 그 소리는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또 멕시코 팀이 공격을 시작하면 관중들은 발을 구르며 ‘야 야 야이야’로 귀에 익은 멕시코 대표 팀의 공식응원가인 ‘시에트토 린도’를 불러 댔다. 이들은 러시아에 사는 멕시코 교포가 아니었다. 대부분 월드컵을 보기 위해 멕시코에서 건너온 팬들이었다. 지구 반대편인 러시아 로스토프까지 찾아와 경기장을 가득 메운 것이다. 그들의 뜨거운 팬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날 멕시코 관중들의 열렬한 팬심은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최근 광주·전남 지역 경제 상황과 지역민들의 ‘애향심’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광주·전남 기업으로 50년 이상 된 보해양조와 광주은행, 금호타이어가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광주은행은 송종욱 은행장이 취임 후 영업 이익을 증대시키면서 시중 은행들과 경쟁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25%대에 머물고 있다. 대구은행과 부산은행의 40%대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그런데 광주은행의 지역을 위한 사회 공헌 비용은 대구·부산은행보다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700명의 광주은행 식구들를 비롯해서 매년 지역 인재를 우선 채용하는 것도 지역 은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금호타이어도 마찬가지다. 금호타이어 광주·곡성 공장에 근무하는 3900여 명이 모두 지역민들이다. 하지만 예전 금호타이어가 잘나갈 때도 지역 시장점유율은 40%대에 머물렀을 뿐이다.

보해양조는 심각한 수준이다. 예전 보해양조는 광주·전남에서 80~90%대의 시장점유율을 보였으나 현재 30~40% 유지도 힘들다고 한다. 경남의 지역 소주는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경쟁 업체가 도저히 발을 못 붙이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니 부러울 뿐이다. ‘소주 한잔 하는데 무슨 애향심까지?’라는 물음에 대해 역설적으로 소주 한잔으로도 애향심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문제는 이들 기업 제품이 경쟁사에 비해서 품질과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보해 잎새주의 경우 라벨을 떼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보면 경쟁 업체 소주와 대부분 구분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에 ‘애향심’에 의존하는 기업 행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맞다. 하지만 제품에 문제가 없고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 데다 지역에 대한 사회 공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관심 부족으로 인해 50년 이상 된 지역 기업들이 동력을 잃어 간다면 광주·전남 시·도민들로서는 한번 생각해 볼 일 아닐까.

광주은행이 서울·경기 지역에 31개 점포를 성공적으로 연착륙시킨 데는 700만 호남 향우회의 힘이 컸다. 그들이라고 금리가 더 싸고, 더 가깝고, 조건이 더 좋은 시중 은행을 모르고 있겠는가. 고향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약간의 손해에도 발품을 팔면서 ‘광주’라는 가슴 뭉클한 의미와 의리로 광주은행을 찾아 준 것이다. 이처럼 지역명을 넣은 제품들이 해당 지역에서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제품들도 많다. 제주 삼다수와 평창수는 제주와 평창에서 각각 전국 평균보다 매출이 4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정탄산수도 전체 매출은 8위지만 청주에서는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속초 홍게라면, 강릉 교동반점 짬뽕 등도 전국 판매는 저조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 관중들의 열렬한 팬심에는 못 미칠지라도 우리 지역에 어떤 기업들이 있고 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경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지 정도는 지역민이라면 최소한 알아야 하지 않을까. 부산처럼 지역 소주(무학·대선) 점유율이 90%대에 육박하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마시는 한잔의 소주가 지역의 경제를 살찌울 수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