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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현 화순 용암사 주지스님] 어쩌다 보니 구경꾼
2018년 05월 25일(금) 00:00
영화가 극장에 걸려서 상영되는 시점이 되면 관객은 영화의 내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구경꾼은 세상의 한 부분이다. 그저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행위임은 틀림없다. 구경꾼은 영화의 관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페이스북을 보니 100여 명이 참석한 2차 촛불법회를 조촐하게 마쳤다는 한 스님의 글이 올라와 있다. 그 스님은 한 생각만 돌이키면 승가의 구성원 모두가 잘 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작금의 종단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 곳곳에서 적폐 청산의 물결이 일었고 조계종단 역시 적폐를 청산하자는 흐름이 일어났다. 그러나 총무원장 선거를 거치며 기득권자들은 수성에 성공하였고, 종단 내 적폐 청산 운동은 소수의 외침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번 MBC PD수첩의 “큰스님께 묻습니다” 방영을 계기로 다시 촛불 법회를 시작한 모양이지만, 호응은 여전히 그리 크지 않은 모양이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 역시 나는 구경꾼이다. 종단 내 적폐 청산 운동에 공감하지만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는다. 기껏 동참한다고 해봐야 페이스북에서 관련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아니면 공유하는 정도다.

꽤 오래 전에 누군가가 내게 “그래도 감옥살이보다 중노릇하는게 더 힘들지 않아요?”라고 말하길래,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사람의 얼굴을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았던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위로랍시고 한 말이겠지만, 내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가시같은 말이었다. 80년대의 거의 대부분과 90년대 초반 동안 나는 사회적 대립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 시기는 나의 20대와 거의 일치한다. 강하게 주장하고, 끈질기게 투쟁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기를 그다지 후회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20대를 빠져 나온 나의 몸과 마음은 너무도 많이 지쳐 있었다. 가끔 평생 써야 할 에너지를 그 시기에 다 쏟아 부은 듯 한 자기 연민성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20대의 나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분노하기만 할 뿐, 정작 그런 자신은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설령 나의 청춘이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면의 성숙을 포기한 대가일 것이다.

출가하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 삶은 덤이다. 나머지 인생이다”라고. 의외로 이 단순 명료한 생각이 출가한 이후 너무도 비상식적인 온갓 상황들에 맞서 나를 버티게 한 힘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20대의 내가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모습에 가깝다. 뭘 하든 예전처럼 무모하게 덤벼들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옳든 그르든 밖으로만 치달리던 그 시절이 내게 남긴 부작용 혹은 후유증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세상사를 대할 때면, 나의 바깥으로 향하기보다 안으로 안으로 잦아들곤 한다.

요즘 들어 가끔 ‘이만하면 살 만큼 살지 않았어?’하는 생각이 불쑥 들곤 한다. 그럴 때면 삶이 끝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 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온 내가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뜬금없고 황당한 생각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비로우려면 우선 자신에게 자비로워야 하지 않을까. 자비심은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자에게 선사하는 부처님의 선물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 만큼 중요한 일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며, 스스로에게 자비로운 마음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나와 동행할 진정한 벗은 자비심이다.

핑계 같은 넋두리가 길어졌다. 혹자는 종단 내 적폐 청산 운동에 공감하면서도 적극 동참하지는 않는 이런 나에게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안의 소리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속삭인다. 그 와중에도 몸은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다. 이런 내가 지금의 현실을 고착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다보니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구경꾼으로 살고 있다.

그래도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을 날도 있을 거다. 20대에 지겹도록 부르던 이 노래 가사가 전혀 다른 의미로 와닿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