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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라는 병
2018년 05월 16일(수) 00:00
[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지난겨울 아내가 독감으로 입원하였다. 그 바람에 네 명의 환자가 있는 좁은 병실을 1주일간 매일 찾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입원 사흘째 되던 날에 초등학교 2학년 손자 녀석이 병원을 찾아왔다. 손자가 오자마자 할머니에게 봉투를 내미는 것이었다. “할머니 빨리 나으세요.”라고 연필로 쓴 봉투에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열 장이 담겨 있었다. 손자가 용돈으로 모은 돈이다. 컴퓨터 게임만 즐기는 철부지인 줄 알았던 손자가 대견하기만 할머니는 “이 돈을 어떻게 쓸 수 있겠느냐”고 말끝을 흐렸다. 평소 어른들의 말을 흘려듣는 줄만 알았던 철부지가 속이 꽉 찬 아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아내가 입원한 1주일은 그간 잊고 지내던 아내에 대해 고마움을 새긴 날들이었다. 흔히들 나이 들면 다섯 가지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곧 오우가(五友歌)로 일건, 이처, 삼재, 사사, 오우(一健, 二妻, 三財, 四事, 五友)라는 것이다. 건강, 아내, 재산, 소일거리, 친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이다. 이것이야말로 나이 들수록 갖춰야 할 필수 무기가 아닐까 싶다.

정년 퇴임 후 10년. 사진을 찍고, 강의하고, 가끔 신문에 칼럼을 투고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거실에서 내려다보면 빼꼼히 바다가 얼굴을 내밀고, 발아래 펼쳐지는 숲과 드넓은 녹지가 바로 우리 집 정원이다. 노후의 작은 행복에서 나는 오늘도 큰 기쁨을 얻는다.

돌이켜보면 시곗바늘처럼 일 속에 파묻혀 밤낮을 모르고 지냈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퇴임 후 욕심의 무게를 줄이고 났더니 나에겐 행복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꽉 쥐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중 많은 것들은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 그것을 붙들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도, 오히려 버릴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욕심을 줄이면 불행도 행복으로 바뀐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가는 중이다.

‘마음을 비우고 산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소유하는 삶’에서 ‘존재하는 삶’으로 그 무게 중심을 옮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탐욕’이라는 것이 끝이 없어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이라는 점이다. ‘한나절 동안 걸어 돌아올 만큼 땅을 가지라’는 악마의 말에 저물도록 걷기만 하다 쓰러져 죽은 톨스토이 우화 속의 농부처럼 그렇게 죽거나 망할 때까지 ‘탐욕’을 키우기만 할 것인가.

미얀마에 가면 원숭이 잡는 덫이 있다고 한다. 그쪽 원주민 사이에서 원숭이의 탐욕을 이용한 간단한 사냥법이다. 원숭이 손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좁고 배가 불룩한 유리병 안에 단단한 과일을 넣어둔 것이다. 물론 유리병은 나무 밑동에 단단히 묶어 놓는다. 얼마 후 가보면 원숭이는 영락없이 잡혀 있다. 냄새를 맡고 온 녀석은 손을 넣어서 과일을 잡고 손을 빼려고 발버둥을 쳐도 절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일만 놓으면 손을 빼서 달아날 수 있으련만 끝내 놓지 않는다고 한다.

요즈음 가만히 보면 원숭이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도 ‘욕망의 덫’에 그렇게 걸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원숭이가 과일의 달콤함에 파멸되듯이 우리 인간은 돈과 권력과 쾌락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 정말 편하게 존경받고 잘 살 것 같은 귀한 분들이 못 그러니 말이다. 청백리와 존경받는 기업인이 그리운 시절, 채우기에 급급한 탐욕의 굴레에서 벗어나 ‘비움’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