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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의 파업
2018년 05월 09일(수) 00:00
[심상돈 동아병원 원장]
의과대학 졸업식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을 했다. 그 엄숙한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선서를 요약하면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인술’ ‘봉사’ 그리고 나의 명예를 건 ‘자유의지’에 의한 서약이다.

‘문재인 케어’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의료 정책에 또다시 의사들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와 의사 단체 대표들이 협상하고 있지만 의견차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문재인 케어’는 국민의 의료비 지출을 줄여주기 위한 정책으로, 그 핵심은 법으로 인정한 비급여(법정 비급여 또는 인정 비급여)의 급여화이다. 지금까지 국가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의료보험 지원을 못했던 의료 행위에 대해 일정 금액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병원은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적자 경영을 벗어나기 위해 법정 비급여 의료 행위에 목을 매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법정 비급여의 급여화는 가격의 하락과 정부의 간섭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법정 비급여 의료행위인 MRI 검사는 지금 보다 50% 정도까지 떨어지게 된다. 당연히 병원의 수입이 줄고 경영은 어려워진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수당을 만들어 수입을 어느 정도 보전한다고 한다.

법정 비급여 의료 행위의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고 급여화하면서 의료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을 더 꼬이게 하고 있다. 병원 경영의 적자는 인력 감축으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절대로 ‘안전’과 공존할 수 없다.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 사건도 결국 병원과 의료진만 책임을 지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충분한 의료진을 확보할 수 없는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국가의 책임도 없지 않다. 한번 쓰고 남은 버려야할 약을 경제성을 이유로 국가가 암묵적으로 허락해 나눠서 사용했는데,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도 애써 모른 체하고 있다.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고가의 약은 영유아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작은 소포장으로 만들지 않는다. 수요가 적어 경제적인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은 한번 쓰고 나머지는 버린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전해진다. 물론 그 비용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이유는 환자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영유아이기 때문이다.

최근 30년간 세계 곳곳에서 의료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통제, 왜곡된 의료제도의 도입에 항의하는 의사들의 집단 행동이 있었다.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100일 넘게 지속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의사 파업 36건을 원인별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보수와 관련한 사안이 48%, 보건의료 예산 삭감이나 노후 시설 문제가 22%, 장시간의 근무가 16%라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의사 파업과 환자 안전에 대한 연구도 있다. ‘2008년 영국 의사 파업과 사망률’이라는 논문인데, 1976년부터 2003년 사이 9일에서 17주 정도 진행됐던 5건의 의사 파업 중 어느 기간에도 환자 사망률이 평소보다 증가하지 않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파업은 공정거래법과 의료법에 의해 법적으로 막혀 있다. 의술은 인술(仁術)이라고 한다.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다. ‘인술’은 ‘환자의 안전’이며, 이는 ‘의료진의 안전’을 전제로 한다. 모두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적으로 ‘안전’해야 한다. 의사들은 인술이란 용어가 그리 달갑지 않다. 인술이 갖는 본질적 의미가 싫은 것은 아니라 희생과 봉사정신 충만한 인술을 어떤 상황에서도 ‘강요’받는 게 싫다.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행위가 제공되지 않으면 그 이유와는 상관없이 ‘인술을 외면한 의사’란 비난의 화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역시 그 기억이 좋지 않다. 의사 집단을 비난할 때만,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분명 부조리한 의료 제도에 대해, 환자와 의사 모두의 ‘안전’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올렸는데 ‘인술’과 ‘히포크라테스’를 끌어들였고 ‘밥그릇 챙기기’로 의사와 의사 단체를 비난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통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소수 의견을 틀어막는 것이다. 의사들의 의견을 틀어막기 위해 ‘인술’과 ‘히포크라테스’를 이용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걱정된다. 이제는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조리한 의료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의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