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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현 화순 용암사 주지스님] 빈자일등(貧者一燈)
2018년 04월 27일(금) 00:00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절 아래 주차장에 초파일 연등을 다는 일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에 신도님들이 몇 분 찾아왔다. 한참 등을 달고 있는 내게 인사를 하길래, “등 달러 왔어요?”라고 화답했다. 그랬더니 그녀들의 얼굴에 난감해 하는 표정이 언뜻 스치고 지나가더니, 살짝 지어낸 티가 나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 그래야죠…. 우리도 할까요? 얼마나 남았어요?”

“다했어요. 먼저 올라가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저희는 먼저 올라가 있을게요."

절집에서 ‘등을 단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말 그대로 등을 다는 것. 내가 한 일을 말한다. 둘째는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초파일 연등 서비스를 신청하는 것. 그러니까 나의 화답에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시기적으로 연등을 접수할 시기라 광주에서 일부러 온 것일 터인데, ‘오늘 등 다는 일을 하기로 한 걸 알고 있었나? 그래서 도와주려고 오늘 왔나?’ 싶은 생각도 언뜻 들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들은 오늘 등 다는 일을 한다는 걸 몰랐다. 연등을 접수할 겸, 오랜만에 용암사 나들이 한 것이다. 그런데 주지스님이 등을 달면서 등 달러 왔냐고 하니, 실제로 등을 다는 일을 자기들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순간적으로 받은 것이다. 하나의 말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 때문에 생긴 가벼운 해프닝이다.

불자라면 익히 알고 있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본인이 정성을 담아 등을 달아야 한다. 부처님이 마을에 오시는데 부처님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수행자들이 미리 등을 달아놓고 돈을 받고 판다고 생각해보라. 이보다 더 불경스런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다. ‘등을 단다’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은폐한다고 해서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등을 켜서 이 세상에 오신 부처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항상 부처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등에 담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의 이름이 적힌 등이 일 년 내내 법당에 켜져 있는 걸 싫어할 불자는 없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연등 하나 켠다고 해서 소원이 이루어지리라고 철썩 같이 믿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를 앞날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다독여서 잠깐 잊고 싶을 따름이다. 그것도 약간의 돈만 지불하는 수고만 들이면 되는 일이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편, 초파일 연등 수입이 없다면 사찰의 운영에 크나큰 타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 불교의 엄연한 현실이다. 초파일 풍경은 자본주의가 사찰 경제에 깊숙히 파고든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혼까지 사고파는 요즘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찰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을 다는 풍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전통이다. 부처님이 가신지 벌써 2500여 년이 흘렀으니 형식이라도 남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아름다운 전통 역시 변한다. 처음엔 그 마음과 형식이 모두 잘 전해지지만 어느 순간 처음의 마음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는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형식조차 사라져 결국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신도들은 정성을 담아 연등을 달고 또 스님들은 금액에 상관없이 신도님들의 시주물을 고맙게 받으면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이런 상식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식이 상식으로 통용되기만 해도 그 사회는 건강하다고 하질 않던가.

무언가가 풍습으로 뿌리내리고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은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는 숱한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대에서 아름다운 전통이 사라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도 없다. 초파일 연등을 켤 때만이라도 2500여 년 전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어떤 마음으로 부처님께 등불을 올렸는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 아름다운 풍습과 처음의 그 마음이 우리들의 후손과 그 후손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난타는 부처님께 등불을 공양하며 이렇게 서원했다.

“이 작은 등불은 저의 큰 재산을 바치는 것이오니, 곧 저의 마음까지 모두 바치는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이 인연 공덕으로 저도 내생에 지혜광명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없애게 하여지이다.”(현우경, 빈녀난타품)

올해도 어김없이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당신의 심중에 빈자일등은 환히 켜져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