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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세습이야”
2018년 04월 25일(수) 00:00
[이병우 단국대 외래교수]
한 고객이 항공사에 항의 메일을 계속 보내와서 담당 직원이 업무를 못할 지경이었다. 그 고객은 좌석 배정 등 사소한 불만을 담은 항의 메일을 수십 차례 보내왔다. 직원이 견디다 못해 이를 사장에게 보고하자 사장은 즉시 그 고객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당신이 그리울 겁니다. 안녕.” 고객이 갑질하면 직원 편을 들기로 유명한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허브 켈러허 회장의 일화이다.

켈러허는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경영자’로 불릴 정도로 펀(Fun) 경영을 중시했다. 점잖은 오찬장에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나타나기, 청바지 입고 이사회 참석하기, 토끼 분장을 하고 출근길 직원 놀라게 하기 등 펀 경영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캘러허가 펀 경영으로 얻으려 한 것은 직원들의 마음이었다. 모든 직원의 이름을 다 외웠고 승진·결혼·출산이 있으면 파티를 열어주었다. 연중 가장 바쁜 추수감사절 시즌에 직접 수화물을 운송하기도 했다.

‘직원 최우선주의’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핵심 가치이다. 켈러허는 ‘고객은 늘 옳은 것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고객이 늘 옳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장이 직원들을 크게 배신하는 게 됩니다. 고객은 때때로 잘못된 일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고객을 수송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다른 항공편을 이용하십시오. 우리 직원들을 괴롭히지 마세요.’”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켈러허의 CEO 재임 기간(1978∼2001년) 중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고속 성장했다. 비행기 3대로 출발했지만 창립 30년 후엔 미국 5위안에 드는 대형 항공사로 성장했다. 연봉이 업계 평균보다 30% 적었지만 ’포춘(Fortune)’이 선정하는 ’일하고 싶은 직장’ 상위 10위 안에 빠짐없이 들어갔다. 펀 경영과 탁월한 고객 서비스의 결실이다.

우리나라 기업도 펀 경영을 도입한 사례가 많다. 최근 갑질 사건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대한항공도 2008년부터 펀 경영의 일환으로 여러 행사를 해왔다. 언론에 보도된 주요 내용을 간추려 보면 ‘작은 음악회’, ‘대한항공 골든벨 대회’, ‘여름철 수박파티’, ‘한진그룹 동행 체육대회’ 등의 행사가 열렸다. 이벤트나 음악회 같은 행사가 대부분이었다.

‘펀 경영을 실시하고 신바람 나는 직장 조성에 힘써온 회사’에서 ‘땅콩 회항’에 이어 ‘물뿌리기 갑질’ 사건이 벌어졌다. 연이어 오너 가족의 갑질 행위가 보도되고 있다.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오너 가족에게 인사만 잘못해도 곤욕을 치루는 분위기에서 편 경영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은 한 사람의 일탈이 문제가 아니라 재벌 세습이 가져온 구조적인 문제라고 본다. 한국 재벌은 외국의 다른 대기업과는 달리 총수 일가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세습 경영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대한민국 기업들은 재벌이나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세습이 고착화되고 있다. 21세기에 봉건적 세습 행태가 사회 전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교회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을 그렇게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세습 행태는 둔감하다. 오죽했으면 탈북자 출신인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북한은 권력자 혼자서 다 가지고 세습하는 사회라면 남한은 한 100명쯤이 나눠서 세습하는 사회”라고 했을까.

세습 경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온갖 불법 편법이 시도될 수밖에 없다. ‘삼성 장충기 문자’에서 보듯이 정관경언의 유착은 필연이다. 세습에 성공한 3세는 봉건 영주와 진배없다. 연이어 터지는 제벌 3세들의 일탈 행위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개인의 일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너 리스크로 인해 그 기업에 근무하는 수많은 직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비정상의 정상화를 제도적 장치로 추구해야한다. 세습 경영과 정관경언 유착을 철폐하지 않고서는 사회 통합과 경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명확하다. 문제는 세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