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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작은 통일
2018년 01월 31일(수) 00:00
[송민석 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전남협의회장]
두 차례에 걸쳐 금강산을 다녀왔다. 처음엔 속초항에서 ‘설봉호’로, 두 번째는 340명 수학 여행단을 인솔한 동해선 육로였다. 그 밖에도 남북의 칼날 같은 시선이 오가는 판문점은 7차례나 다녀왔다. 그런만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곳곳이 눈에 잡힐 듯 선하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11월 13일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군 병사가 귀순하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탈북 행렬이 본격화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그 이전에는 많아야 한 해 10명 안팎이 사선을 넘어 한국에 도착했다. 그 후 점차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그 대열은 꾸준히 증가하더니 2016년 말에는 탈북자 수가 3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 이탈 주민’(탈북자)을 흔히들 은 ‘먼저 온 작은 통일’이라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너무도 가까이에 있는 이들이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한민족이지만 마음의 거리는 아직 멀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임기 2년의 ‘통일부 전라남도 통일교육센터’를 4년간 운영하면서 지역 하나센터와 손잡고 탈북자들과 아픔을 함께 나눈 적이 있다. 통일교육센터 사무실에 열정이 남다른 탈북자를 공개 채용하여 그들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안 북한 말투가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처럼 단지 북한지역의 말일 뿐인데 그런 말투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짓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의 탈북 형태는 크게 바뀌고 있다. 배가 고파 탈북하는 이른바 ‘생계형 탈북’에서 먼저 내려온 가족을 찾아오거나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는 ‘이민형 탈북’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삶의 질과 함께 자유에 대한 동경, 북한 내 체제에 대한 불만 등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김정은 정권 자체에 한계를 느껴 엘리트들의 충성심이 약해지면서 북한을 등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를 비롯한 북한 해외주재관들의 무더기 탈북 현상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탈북자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사회적 편견은 여전한 실정이다. 목숨 걸고 입국한 조국이지만 적응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남한 사회의 적응과정 중 “편견과 무관심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내 할아버지의 고향 땅이 남쪽인데도 외국 이민자들보다 더 차별을 받을 때 슬프고, 힘들다”고 한다.

북에 살면서 집단 배치에 익숙하여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그들이다. 탈북자들은 이력서를 쓸 때부터 망설이게 된다고 한다. 쓸 내용도 없을뿐더러 처음부터 진솔하게 탈북자임을 밝힐 경우 면접 기회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선족으로 위장 취업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두고 온 북녘 가족 걱정과 한국 사회 정착을 위한 삶의 몸부림, 인맥도 재산도 없는 조건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그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탈북자도 헌법상 엄연한 국민이며 소중한 통일 자산이다. 과연 우리 대한민국은 사회적 지지를 통해 그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까. 탈북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먼저 온 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하면 통일은 요원할 뿐이다.

독일 통일을 이뤄낸 추진력의 바탕이 동독 주민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입소문을 통하여 한국에서의 탈북자들의 성공담이 북한 내 주민을 동요시키고 있음을 아는가. 북한 주민들이 ‘하루를 살아도 남조선처럼 살고 싶다’는 염원을 가질 때 통일의 문은 저절로 열리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