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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다산연구소장] 새해엔 좀 더 여유로운 삶을
2018년 01월 02일(화) 00:00
지난해 말 취업 포털들의 신조어 소개가 흥미롭다. ‘직딩이’(직장인)들의 고단한 ‘직장살이’를 엿볼 수 있다. ‘다사다망’(多事多忙)!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오늘 제때 퇴근할 수 있을까? 답변은 ‘야근각’. “아마 야근하게 될 것 같다”는 뜻이다. 휴식을 포기한 족속이며(‘쉼포족’), 땅에 묶인 혼령처럼 사무실을 떠나지 못한다(‘사무실 지박령(地縛靈)’). 회사에서 가축처럼 지낸다(‘사축’). 정말 시간이 없다(‘타임 푸어’, time poor). ‘과로사[死]회’다.

그런데 돈도 없다.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는 대로 카드 빚 정산과 세금으로 빠져나가니(‘월급 로그아웃’), 순식간에 텅 빈 통장(‘텅장’)이 되고 만다. 일하기 싫다(‘일하기 실어[싫어]증’). 상사에게 시달려 스트레스다(‘상사병’, 上司病). 퇴근해도 끝은 아니다. SNS를 통해 상사의 업무 지시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든다. ‘메신저 감옥’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 그냥 ‘네’도 아닌 ‘넵!’이라고 반사적으로 답변하게 된다. ‘넵병’이다. 상사라고 불만이 없지 않다. 무슨 일을 시키면 온갖 질문만 해대는 직원(‘물음표 살인마’), 묻지도 않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직원(‘쩜쩜쩜 살인마’)에 화가 난다.

그래도 직장인은 다행이다. 구직자(취준생)는 입사 지원서를 이곳저곳 열심히 내지만, 빛의 속도로 탈락하여(‘광탈’), 멘털이 찢어진다(‘멘찢’). 면접에 가서도 병풍처럼 들러리만 서고(‘병풍’), 탈락의 쓰라림을 마치 재미있는 오락하듯 겪는다(‘탈락잼’).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장기 미취업족(‘장미족’)이 된다. 그들에게 세상은 ‘고목사회’(枯木死灰)다.

이제 직장은 평생직장이 아니다. 저임금으로 직장에 젊음을 바치고, 나이 먹어 연공서열로 보상받던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 한다. 40대에겐 조기 퇴직 후 제2의 직장을 찾는 ‘반퇴 세대’가 화두다. 모두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꿈꾼다. 충동적으로 사표를 내는 게 아니라, 더 나은 회사로 옮기기 위해 현재의 직장에서 착실하게 퇴사를 준비한다. 바로 ‘퇴준생’이다. 취업 준비의 ‘취준생’에 비견된다.

‘워라밸 세대’의 대두는 자연스러운 반발 현상이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WLB)이란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최근에 더욱 주목받는 이 단어는 1970년대 말에 영국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처음엔 일하는 여성의 직장과 가정의 양립이 문제였는데, 그 의미가 점점 확장되었다. 이를 위한 근무시간 자율제(flexi-time), 보육 지원 등이 각국에서 시행되었다. 북유럽에서는 1970년대부터 국가의 복지 정책 차원으로 시행되었고,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기업에서 인재 확보 차원으로 시행되었다. 일본에서는 2000년 이후 고령화와 저출산 대책으로 관련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뒤따르고 있다. OECD의 ‘Better Life Index’에 나오는 ‘Work-Life Balance’ 항목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아주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에서는 ‘일·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 혁신 10대 제안’ 캠페인으로, ‘정시퇴근’, ‘퇴근 후 업무 연락 자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나이젤 마쉬(Nigel Marsh)는 일과 삶의 균형에 관한 테드(TED) 강연(‘How to make work-life balance work’, 2010년 5월)에서 충고했다. 첫째, 정부나 기업의 여러 프로그램(근무시간 자율 선택제, 금요일 캐주얼 복장 출근, 남성의 육아휴가 등)이 아주 피상적인 것일 수 있다. 둘째, 이 문제는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고 책임질 각자에게 달려 있다. 셋째, 균형을 판단할 기간을 너무 짧게 잡아도 비현실적이고 은퇴 후까지 잡으면 너무 늦다. 넷째, 균형이란 것이 직장 끝나고 헬스장에 등록하는 따위나 특별한 그 무엇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하루를 보낸 경험을 소개했다. 평범한 일상에 소중한 삶이 있다는 의미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연을 마무리했다.

“제 요점은 작은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에 극적인 대변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맞은 곳에 최소한의 투자를 함으로써, 여러분 관계의 질과 여러분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충분히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성공에 관한 사회의 정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 가장 돈 많은 사람이 승자라는 바보스럽게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 ‘잘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좀 더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정의로 말입니다.”

일-삶의 균형을 좀 더 분석하려면 돈이란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돈은 일의 대가이면서, 삶을 위한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가진 돈의 액수에 따라 일해야 할 시간과 여가 시간의 분배 기준을 정할 수 있다. 결국 일-돈-시간의 균형이라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인생의 시간(life time)을 보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한편 시간이 있어야, 일도 하고 돈도 쓴다. 일은 돈을 구하는 생계 수단으로서 최소한의 의미가 있으며, 자기 삶을 실현하는 의미도 있다. 일만으로도, 돈만으로도, 시간만으로도 삶은 온전하지 않다. 세 가지를 모두 적절히 갖추어야 한다. 균형이 필요하다. 그 비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양도 중요하지만, 일과 돈과 시간의 질이 높아야 한다.

개인에겐 삶을 보는 태도의 문제지만, 사회적으론 문화의 문제가 된다. 위계적 지위를 누리고 과시하려는 문화에 젖어서는 균형을 고려하기 쉽지 않다. 일-돈-시간의 균형을 이루려는 자세라면, 평범한 삶을 소중히 여기고 평생 일하고 배우면서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자세가 확산된다면, 사회적으로 배려하고 나누는 문화로 나타날 것이다.

국민경제적 차원에선 어떠한가? 노동 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실증적 연구가 있다. 일과 돈 사이에 비례 관계가 성립해야, 다시 말하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현재의 노동자 간 격차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신분 상승 투쟁과 같은 방식보다는 공정한 룰과 공정한 보상 체계(임금 체계)가 해법이다. 일-돈-시간의 질이 향상하면,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소비 수요가 확대되어, 경제 성장 내지 경제 발전으로 귀결될 것이다.

새해를 맞아 결심해 본다. 올해는 나도 일-돈-시간의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겠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기원한다. 새해에 소중한 일과 돈과 시간이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