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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 역사문화마을의 개발과 보존
2017년 12월 13일(수) 00:00
[박홍근 건축사·포유건축 대표]
양림의 기록은 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양림산이 최초 언급된다. 조선시대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낸 양촌(楊村) 정엄(鄭淹, 1528-1580)의 효행을 기린 정려각(旌閭閣)은 지금도 마을에서 볼 수 있다. 1899년에 지어진 이장우 가옥(옛 정낙교 가옥)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최승효 가옥(옛 최상현 가옥, 1920년대)이 있는 마을 일대는 광주의 명당 터다. 사직공원을 등지고, 광주천을 맞이하며 멀리 무등산을 바라보고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바로 옆 양림산 자락에는 1904년부터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기독교 선교사들의 흔적이 많다. 학교, 병원, 예배당, 사택 등 근대문화유산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역사문화마을에 ‘양림 역사문화마을 관광자원화사업’이라는 것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되었다. 선교사묘지 주변 정비, 건물 보수, 문학공원 조성, 이런 저런 기념관 건축, 주차장 확보, 소방도로 개설 등등 하드웨어 부분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 마을의 주요 공간이나 경관이 훼손되었고, 가치 있는 건물과 길과 필지들이 사라졌다. 새롭게 들어선 개개의 건물은 좋은 디자인이라고 본다고 해도, 이 지역에 어울리는 건물인지는 동의할 수 없다. 또한 큰 길이 생긴 것이 역사문화마을을 좋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없다. 관광자원화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더 좋은 관광자원들을 훼손하고 말았다.

그 외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마을만들기 사업’ 등등이 진행되었고, 진행되고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이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자산들이 사라지고, 사라질 위기에 있다.

2016년부터 새로운 계획이 또 시작되었다. 양림5거리를 중심으로 광주천변에 접해 있는 노후주거 밀집 블록을 ‘주거환경개선 정비구역’으로 지정하고, 그중 일부 지역은 재생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걱정도 많다. 아직 행정을 포함한 전체적 역량 강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민간 영역의 건축물과 공공의 조형물들이 종합적 계획 없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는데, 마을에 대한 건축 가이드라인이 없다. 문화재 주변은 ‘심의’를 거치지만 상세한 가이드라인도 없이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다르게 적용된다. 역사문화마을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고, 어떻게 만들어 갈지 걱정이다.

유네스코는 역사마을 보존원칙으로 네 가지를 권고하고 있다. 첫째, 필지를 보존한다. 둘째, 길을 보존한다. 셋째, 지형을 건드리지 않는다. 넷째, 주민의 생활 양식을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터’무늬를 최대한 지키는 것이며, ‘인간이 그린’ 무늬를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찾으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역사문화마을인 양림동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 네가지 보존 원칙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깊은 사유가 없었다. 사업은 많았으나 역사문화마을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고, 개발 ‘원칙’을 만들어 내질 못했다. 상황에 따라, 행정 책임자에 따라 다양한 시선으로 이루어 졌다. 그리하다보니 양림동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는 일과 일관성, 지속성에 한계를 많이 보였다. 지금까지 건축, 토목, 조경, 조형물, 간판 등등이 따로따로였다. 전 과정을 입체적이고 세밀히 조정할 컨트롤 타워가 없었다. 선진 성공사례들을 보면 권한을 가진 총괄 건축가가 이런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는 그리 할 수 없을까.

역사마을의 새로운 건축 환경은 또 다른 문화의 켜를 만드는 행위다. 마을의 미래가 그곳에 있다. 좋은 건축 환경은 역량을 갖춘 행정과 건축주, 마을주민이 함께한 사용자 그룹, 동참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 이 모든 것을 조율하여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는 건축가에 의해 시작된다.

양림 역사마을을 위해서는 역량 있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모든 세우고(建) 쌓는 일(築)에 입체적·인문적 통찰과 총체적 판단, 정교한 설계와 시공관리가 필요하다. 이게 쌓여야 지속가능한 마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