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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5000년에 걸친 카레의 여정
2017년 12월 07일(목) 00:00
인도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후추를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신비로운 작물을 유럽에 처음 알린 사람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동방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차지하며 대제국을 건설한다. 이 과정에서 알렉산더 대왕은 식물학자 친구를 대동해 점령지의 다양한 향신료를 수집하도록 했다.

향신료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인류 역사는 급격한 지각 변동을 겪는다. 인도에서 무역풍을 타고 이집트에 도착하는 향료길이 개발되고, 로마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향신료는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1세기 유럽에 수입되는 물품의 절반 이상은 향신료였고 그 대부분을 인도에서 들여온 후추가 차지했다.

로마에 도착한 후추는 금과 같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당시 향신료의 유통은 아랍 상인들이 인도에서 로마까지 옮기고, 이를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독점적으로 구입해 유럽 전역에서 되파는 중계 무역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후 베네치아 상인들은 11세기 후반부터 200년간 진행된 십자군 원정을 통해 향신료 시장에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결국 베네치아 상인들은 15세기까지 향신료 무역을 독점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다.

사정이 이러하자 유럽 각국은 베네치아를 거치지 않고 인도의 향신료를 직접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를 개척하기에 이른다. 좀 더 싼값에 향신료를 구하려는 유럽 각국의 의지는 바야흐로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된다. 가장 먼저 성과를 낸 곳은 해양 강국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1498년 인도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후추 교역에 있어 베네치아의 독점적 구조가 깨지고 포르투갈의 시대가 열린다. 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 역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쥐고 있던 향신료 교역의 패권은 채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1588년 스페인 제국의 무적함대가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군에게 패함으로써 관련 항로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차지가 된다. 이후 두 나라는 동인도회사를 세워 영국은 인도를,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향신료 교역을 독점한다. 당시의 향신료 교역은 한 번의 항해로 100배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한편 인도에서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던 영국인들은 새로운 발견을 한다. 인도 음식에서 사용되는 향신료는 약 3000여 종. 이처럼 많은 향신료는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는 각각의 조합을 통해 거의 무한대의 맛을 창조한다. 향신료를 수천 년 동안 다뤄 온 인도인들은 경험을 통해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른 조합을 만들어 냈다. 이 조합을 일컬어 ‘마살라’라 한다. 영국은 이 마살라에 주목했다. 하지만 영국인에게 다양한 향신료를 조합해 기호에 맞는 마살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누군가 영국인의 기호와 식생활에 적합한 마살라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18세기 말 C&B(크로스 앤드 블렉웰)라는 식품 회사에 의해 세계 최초의 ‘커리파우더’가 개발된다. 그러니까 커리파우더는 영국 스타일로 조합한 마살라인 셈이다.

이때부터 부의 상징이던 향신료는 대중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식재료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버터에 밀가루를 볶은 루(roux)를 카레파우더와 조합하는 조리법이 개발됨으로써 온전히 서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커리파우더를 이용해 만든 ‘커리스튜’는 조리가 간편하고 상할 염려가 없어 선원들의 식사로 적합했다.

19세기 말에 창설된 일본의 근대식 해군은 영국 해군을 모델로 했고 심지어 배에서 먹는 음식까지 따라 했다. 영국 해군의 ‘커리스튜’를 모방해 자신들만의 ‘카레’를 만들었다. 17세 때 이를 처음 맛본 야마자키 미네지로는 영국식이 아닌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마살라에 도전했다. 커리파우더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향신료의 조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배합 비율, 향신료의 특성에 따른 볶는 시간, 그리고 적정한 숙성 기간을 찾아내는 꽤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야마자키는 3년의 시행착오 끝에 1923년 결실을 본다. 제품의 명칭은 커리파우더를 일본식 발음에 맞게 ‘카레파우다’로 바꾸고 회사의 이름까지 C&B를 모방해 S&B(선 앤 버드)라고 명명한다.

이후 카레파우다는 일본인의 식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우선 쌀밥과 만나 카레라이스가 탄생한다. 이어서 카레빵, 카레고로케, 카레우동, 돈카츠카레, 카레라면 등을 차례로 만들어 낸다. 향신료의 종주국 인도는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기발한 음식이다. 1950년부터 출시된 즉석 카레와 레토르트카레는 대중화를 넘어 카레가 일본의 국민 음식이 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일본의 ‘카레 열풍’은 바다 건너 한국에까지 전해진다. 오뚜기식품은 1969년 ‘즉석카레’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카레 가루를 생산하게 된다. 한국 역시 일본만큼이나 카레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쌀밥이 주식이었던 까닭에 카레라이스는 순식간에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카레는 한국에서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기막힌 파트너를 만난다. 바로 김치다. 카레라이스와 적당히 익은 김치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환상의 조합이다.

그래서 나는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의 운명만큼이나 음식의 운명 또한 예측할 수 없다. 5000년 전 향신료를 조합하던 인도인들은 카레가 한반도에서 밥과 김치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