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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영란법’ 이야기
2017년 11월 28일(화) 00:00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느 명절날 부친께서 술 한 병을 주시면서 담임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하셨다. 통칭 ‘정종’이라 불렀던 2리터짜리 청주 술병이었는데 나는 그걸 들고 교무실로 가서 담임 선생님께 전해드렸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살아 있는 닭 한 마리를 들고 담임 선생님 댁으로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때 선생님 댁에서 선생님과 함께 한동안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엔 명절날 선생님에게 조그마한 정성을 표하는 것을 당연한 도리라 여겼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도 바뀌었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 꽃 한 송이도 개인적으로 드릴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김영란법’ 때문이다. 이 김영란법과 관련해서 씁쓸한 사건이 있었다.



되돌아온 책



나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에 다니는 두 명의 손녀가 있다. 지난 10월 초, 내가 쓴 책이 출간되었기에 손녀들의 담임 선생님께 우편으로 우송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간단한 편지도 동봉했다.

“OOO 선생님께.

OOO 할아버지입니다. 여느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OO는 저에게 둘도 없는 손녀입니다. 그동안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OO가 착한 짓 하면 칭찬해 주시고 나쁜 짓 하면 매를 들어서라도 꾸짖어 주십시오. 그래서 건전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침 제가 쓴 책이 출간되어 보내 드립니다.”

그런데 며칠 후 책이 되돌아왔다. 담임선생이 손녀를 시켜 나의 며느리에게 책을 돌려보낸 것이다. 순간 나는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쾌한 기분도 아니었다. 내가 김영란법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가 1만8000원의 책을 저자가 직접 보내는 것이 무슨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또 별다른 청탁을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잘못이었다. 얼마 후에 며느리로부터 들은 바로는, 두 선생님은 받은 책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의논한 끝에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아마 김영란법에 관한 매뉴얼을 검토했을 것이다. 나는 두 분 선생님의 결단을 존중하면서 김영란법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고마운 선생님



꽃 한 송이도 개인적으로 선물하지 못하게 한 김영란법이 왜 만들어졌는가? 그동안 학교를 휘젓고 다닌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치맛바람이 얼마나 거세었던가! 값비싼 선물을 뇌물로 바치면서 자기 자식만 잘 봐 달라는 극성 학부모들의 행태는 마땅히 없어져야 할 적폐임에 틀림없다. 꽃 한 송이 선물마저 금지한 것은 그러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적 조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으로 나도 반성을 했다. 담임 선생님이 책을 받았다면 아무래도 손녀들에게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주지 않았을까? 은연중에 그걸 바라고 내가 책을 보낸 것이리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를 반성하도록 이끌어 준 두 분 선생님이 고마웠다. 그러나 이런 반성은 지극히 논리적인 반성이고 가슴 한구석엔 여전히 씁쓸한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에 내가 선생님께 술 한 병 갖다 드린 일과 고등학생 때 선생님 댁에 닭 한 마리 갖다 드린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때엔 미풍양속이던 것이 지금은 범법 행위가 된 현실이 서글펐다.

선생님께 꽃 한 송이 드리는 것까지 법으로 규제해야 할 만큼 세상이 이토록 각박해졌는가. 사제(師弟) 간의 관계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분한 생각도 들고 슬픈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쩌랴, 현실이 그런 것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손녀들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할 방법이 없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결론을 내렸다. 학년이 끝나고 종업식을 한 후에 되돌려 받은 책을 다시 갖다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는 직무와 관련 없는 시기여서 법에 저촉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보잘것없는 책 한 권 전달하는 일이 왜 이렇게도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