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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다산연구소장]가을엔 시(詩)를
2017년 10월 10일(화) 00:00
본디 시(詩)를 좋아하지 않았다. 시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학교 공부로 배웠지만, 그 시는 그저 교과서 속의 시였을 뿐이다. 다행히 그 후 시와의 거리감을 줄일 계기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는 시인이나 쓸 수 있는 장르였다. 시가 요구하는 정형성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역시 글은 자유분방한 산문이라는 생각이었다. 시는 내게 ‘신 포도’였다.

최근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갈수록 짧은 글을 선호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둘째는 스스로 필요하기 때문인데, ‘박문이약지’(博聞而約之)와 글쓰기 연습이다.

요즘은 신문 칼럼도 에스엔에스에서 소개된 것을 모바일을 통해 읽는 실정이다. 모바일에선 긴 글은 질색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긴 글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글을 짧게 써야겠다는 강박관념 속에 떠오른 것이 시라는 장르다. 가량 트위터 글자 수가 140자라면, 시조 한 편은 45자 내외다. 세 편의 시조도 쓸 수 있겠다.

그러나 모바일 환경에서 시가 제대로 읽힐지는 알 수 없다. 모바일의 독서는 책을 통한 고전적인 독서와 맛이 다르다. 또한 책장을 넘기면서 상당한 시간을 확보하여 상상력을 펼치거나 깊은 사유를 하면서 행하는 고전적인 독서를 모바일 독서가 완벽하게 대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다. 마치 티브이가 등장하고도 라디오의 자리가 있고, 영화관 극장의 분위기가 있듯이, 각자의 특성 있는 독서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매체에 따라 적합한 글의 형식이 있다고 봐야 한다. 모든 글을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데 휩쓸리는 것을 경계할 필요도 있다. 짧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짧은 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전통적인 ‘박문이약지’(博聞而約之)의 관점에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를 짧은 글로 요약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지식을 내부의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언어의 경제성 내지 효율성을 활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내 생각을 외부로 표현할 때도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 짧은 글을 생각해 본다. 옛글에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書不盡言 圖不盡意)는 말이 있다. 언어 문자는 도구로서의 본래적 제약이 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본의와 멀어지고, 글이 길다 하여 뜻이 더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돌려서 말하기도 하고, 일부만 말하여 여백을 살리기도 하고, 아예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필자가 시라는 형식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문자언어의 제약성과 닮아 있다. 그런 것은 오히려 감내할 만한 것이다. 본디 그런 것이니까. 제약 속에 어떻게 자신의 뜻을 담아낼까 하는 것은 오히려 시도해 볼 만한 것이다. 얼마나 그럴듯한 시를 짓느냐 하는 것은 차치하고, 형식에 맞추어 짓다 보면 글쓰기 연습이 되고 나아가 하나의 유희가 된다.

시에 대해 적극적인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외부의 자극도 있었다. 송재소 교수의 ‘중국 인문 기행’을 따라다니다 보니, 한시(漢詩)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또한 동행하는 분 가운데는 한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면서도 한시를 짓는 분이 있어 부러웠다.

한시는 언감생심인 필자에게 관심을 끈 시의 형식이 바로 시조(時調)였다. 대략 45글자로 분량도 적은 데다 여기에 제목을 얹으면 완결성을 갖추는 데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음절 구분이 뚜렷한 한글이어서, 서너 글자로 한 음보를 구성하고 네 음보의 운율을 살리면 그만이다. 성조(聲調)가 발달한 중국어로 된 한시의 운(韻)처럼 까다로울 것도 없다. 삼행시를 쓰는 기분으로 즐길 만하다.

최근 에스엔에스 공간에선 날카로운 댓글들이 난무한다. 현실에선 국가 지도자조차 거친 언사를 뱉어 낸다. 감정을 여과시키고 자신의 뜻을 은근히 담아 둘 시적 감각과 표현이 필요한 것은 아닐는지.

시조는 원래 노래 가사였다고 한다. 사실 대중가요 가운데 음악 없이도 되뇔 만한 좋은 가사들이 있다. 시는 결코 범접하지 못할 그 무엇은 아니다. 봄꽃보다 더 붉은 가을 잎의 계절에, 시를 한 수 읊어 보자. 꼭 자작시일 필요는 없다. 이 가을엔 시를 한번 읊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