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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더불어 맞이하는 가을
2017년 09월 14일(목) 00:00
은행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결에 노란 단풍의 ‘기미’가 담겼다. 머지않아 도시는 잎잎이 노란 형광등을 매단 은행나무들로 찬란하게 밝아질 것이다. 폭염과 폭우로 우울했던 사람들의 얼굴도 은행나무의 노란빛과 더불어 맑고 환해지리라.

은행나무는 물에서 땅으로 생명이 올라와 자리 잡던 초기부터 살아온 식물이다. 무려 3억 년 전부터 빙하기와 같은 멸종의 위기를 거치면서도 더불어 살아온 생명체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인생살이의 희로애락을 나누었으며, 나무 또한 사람 곁에서 험난한 ‘나무살이’의 위기를 이겨 냈다. 나무는 사람에게, 사람은 나무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가운데에 가장 오래된 나무로 강원도 삼척의 늑구리라는 작은 마을 뒷동산 꼭대기에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있다. 무려 1500년 정도 살아온 나무다. 은행나무 가운데에는 물론이고, 나라 안의 여느 나무를 통틀어서도 가장 오래된 나무다.

그런데 이 나무가 1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다는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나무의 나이를 측량할 수 있는 나이테가 담긴 나무줄기가 오래전에 부러지고 썩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줄기가 남아 있다 해서 그 긴 세월의 흔적이 나이테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오래된 나무의 줄기는 안쪽부터 썩어 나이테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무의 나이를 짐작할 근거는, 나무의 생김새와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뿐이다.

이 오래된 은행나무의 연륜을 짐작할 만한 근거는 생김새에 있다. 새로 솟아오른 여러 개의 맹아지가 사라진 줄기를 둘러싸고 높직하게 자랐다. 맹아지란 나무의 뿌리에서 나무줄기 곁으로 돋아나는 새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은행나무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제가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맹아지 하나가 100∼200년은 되고도 남아 보인다. 매우 크다.

맹아지와 원 줄기는 분명히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생명체다. 줄기는 부러지고 썩어 없어졌지만 땅속의 뿌리는 살아 있었다. 애면글면 삶을 이어 가던 뿌리는 죽은 줄기 곁으로 맹아지를 돋워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은행나무를 아쉬워하던 나무 곁의 사람들은 새로 돋아난 맹아지가 고맙고 소중했을 것이다. 가늘게 솟은 맹아지를 애지중지 보살핀 게 2백 년이 넘었다.

애초의 형태를 잃고 시름하던 은행나무는 마침내 사람들의 보살핌에 힘입어 새로운 모습으로 크게 자랐다. 사람과 나무가 함께 한 세월이 무장히 흐르자 이제 나무는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특별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줄기 없이 맹아지만으로 우뚝 선 이 은행나무는 매우 특별한 모습으로 자라났다. 나무는 이전의 생명이 아닌 새로운 생명을 살게 됐다. 사람과 나무가 더불어 이뤄 낸 결과다.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신비이며, 진화의 이치다.

무릇 모든 생명이 그렇다. 고정된 형태로 평생을 살아가는 생명은 없다. 때로는 찢기고 부러지면서도 생명은 모질게 살아남는다. 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나무는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과 연합하고 협동하면서, 달리 말해 더불어 살면서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상상도 못한 성과를 이뤄 내는 게 생명의 역사고, 진화의 흐름이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성과다.

이처럼 부분의 합보다 전체가 훨씬 큰 효력을 갖는다는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는 시너지(Synergy)라는 말을 처음 썼다. 생명과 사랑은 예상도 못한 효력을 발휘하는 시너지의 결과를 이룬다. 나무와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삼억 번 넘게 은행나무는 가을을 환희의 빛깔로 밝혀 주었다. 은행나무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더불어 살아야 할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지닌 원초적 본능이다. 열매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거리를 뒤덮는다 해도, 결코 그를 거부할 수 없으며 거부해서도 안 되는 게 이 땅에 살아야 하는 모든 생명의 운명이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