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찬석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정사목] 일곱 가지 사회악
교회안에 칠죄종(七罪宗, 일곱 가지 대죄)이 있다. 이 칠죄종은 그 자체가 죄이면서 동시에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죄를 말한다. 칠죄종은 6세기말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교리화한 것으로 그 일곱 가지는 ‘교만, 인색, 음욕, 탐욕, 분노, 질투, 나태’이다. 그리고 2008년 3월 10일 교황청 내사원은 세계화 시대 신(新) 칠죄종을 발표했다. 일곱 가지 새로운 대죄는 ‘환경파괴, 윤리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과학실험, DNA 조작과 배아줄기세포연구, 마약거래, 소수의 과도한 재물 축재, 낙태, 소아성애’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또한 ‘일곱 가지 사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일곱 가지 사회악이란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성 없는 상거래’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이다.
첫 번째 사회악은 ‘원칙 없는 정치’이다. 정치를 하려면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한 가정에서도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국가를 다스리는데 원칙이 없으면 그 국가가 어떻게 바르게 가겠는가? 그래서 정치를 하는데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 없는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다. 따라서 원칙없는 정치는 사회악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원칙 없는 정치를 해서 사회악이 되어버렸다. 정치인들은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이야기 하지만, 단순히 구호에 지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바뀌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원칙이 없는 정치를 하다보니까, 사회가 이렇게 시끄러워 악이 되어버렸다. 정치의 원칙 기준은 헌법이다. 그런데 그 헌법 위에서 놀아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무슨 원칙 있는 정치가 되겠는가?
두 번째 사회악은 ‘노동 없는 부’이다. 노동 없이 부를 누리는 것은 사회악이다. 법을 지키지 않고 부를 누리는 것이다. 부모가 물려준 60억 원을 20여년 만에 7조원 이상으로 불리는 ‘요술’이 가능한가? 매일 열심히 노동하는 노동자보다 부동산 매매를 통해 더 많은 부가 주어지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가? 국민들이 맡겨준 권한을 국민들이 아닌 자신의 부를 쌓는데 쓰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노동 없는 부는 사회를 망가트리는 사회악이다.
세 번째 사회악은 ‘양심 없는 쾌락’이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쾌락을 추구하면 사회악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에 고통과 피해를 주는 그런 사회악을 없애야 국가와 사회가 병이 들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쾌락이 오더라도 정당한 것은 누리지만 부당한 것은 누려서는 안된다.
네 번째 사회악은 ‘인격 없는 교육’이다. 한 사회가 교육을 시키면서 전인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교육 따로, 인격 따로 그런 것이다. 그런 교육은 사회악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스펙 쌓는 도구로 전락한 나머지 중고등 교육은 대학교 입시를 위한 교육이 되었고, 취업률이 좋은 대학만 장려를 하다보니 인문학부는 줄어들고 취업에 유리한 공학부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은 점점 사라지고 취업기술만 남게 되었다.
다섯 번째 사회악은 ‘도덕성 없는 상거래’이다. 거래를 하면서도 도덕성이 없이 거래를 하는 것이다. 힘과 자본을 바탕으로 원청과 하청의 부도덕한 갑을관계나,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장악은 사회악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소수만 이득을 얻고, 대다수 국민들은 피해를 보게 되니 이것이 바로 도덕성 없는 상거래인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여섯 번째 사회악은 ‘인간성 없는 과학’이다. 인간의 생명이나 윤리는 과학의 발달 속도에 따르지 못하면서 과학문명 안에서 인간성은 날로 쇠퇴해지고 있다. 과학문명은 발달했지만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져간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보다는 돈과 권력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 살충제 계란 문제, 생리대 유해물질 문제와 같은 문제들의 기저에는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성 없는 과학이 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사회악은 ‘희생 없는 신앙’이다. 아마도 신앙인이라면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중에 ‘희생 없는 신앙’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직접 보여주셨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 ‘자기 버림과 포기’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다면, 종교가 도리어 하느님 나라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입으로만 신앙하지 말라는 것이다. 입으로만 하는 신앙은 사회악이고 자기만 하는 신앙은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사회악은 ‘원칙 없는 정치’이다. 정치를 하려면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한 가정에서도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국가를 다스리는데 원칙이 없으면 그 국가가 어떻게 바르게 가겠는가? 그래서 정치를 하는데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 없는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다. 따라서 원칙없는 정치는 사회악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원칙 없는 정치를 해서 사회악이 되어버렸다. 정치인들은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이야기 하지만, 단순히 구호에 지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바뀌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원칙이 없는 정치를 하다보니까, 사회가 이렇게 시끄러워 악이 되어버렸다. 정치의 원칙 기준은 헌법이다. 그런데 그 헌법 위에서 놀아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무슨 원칙 있는 정치가 되겠는가?
세 번째 사회악은 ‘양심 없는 쾌락’이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쾌락을 추구하면 사회악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에 고통과 피해를 주는 그런 사회악을 없애야 국가와 사회가 병이 들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쾌락이 오더라도 정당한 것은 누리지만 부당한 것은 누려서는 안된다.
네 번째 사회악은 ‘인격 없는 교육’이다. 한 사회가 교육을 시키면서 전인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교육 따로, 인격 따로 그런 것이다. 그런 교육은 사회악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스펙 쌓는 도구로 전락한 나머지 중고등 교육은 대학교 입시를 위한 교육이 되었고, 취업률이 좋은 대학만 장려를 하다보니 인문학부는 줄어들고 취업에 유리한 공학부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은 점점 사라지고 취업기술만 남게 되었다.
다섯 번째 사회악은 ‘도덕성 없는 상거래’이다. 거래를 하면서도 도덕성이 없이 거래를 하는 것이다. 힘과 자본을 바탕으로 원청과 하청의 부도덕한 갑을관계나,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장악은 사회악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소수만 이득을 얻고, 대다수 국민들은 피해를 보게 되니 이것이 바로 도덕성 없는 상거래인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여섯 번째 사회악은 ‘인간성 없는 과학’이다. 인간의 생명이나 윤리는 과학의 발달 속도에 따르지 못하면서 과학문명 안에서 인간성은 날로 쇠퇴해지고 있다. 과학문명은 발달했지만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져간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보다는 돈과 권력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 살충제 계란 문제, 생리대 유해물질 문제와 같은 문제들의 기저에는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성 없는 과학이 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사회악은 ‘희생 없는 신앙’이다. 아마도 신앙인이라면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중에 ‘희생 없는 신앙’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직접 보여주셨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 ‘자기 버림과 포기’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다면, 종교가 도리어 하느님 나라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입으로만 신앙하지 말라는 것이다. 입으로만 하는 신앙은 사회악이고 자기만 하는 신앙은 사회악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