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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 침략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나라꽃, 무궁화
2017년 08월 17일(목) 00:00
나무의 우거진 잎이 꽃보다 아름답다 해서 옛 사람들은 여름을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고 했다. 하지만 무궁화는 무성한 여름 나뭇잎의 초록빛을 단박에 이겨낼 만큼 화려한 꽃을 피운다.

나라꽃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나라꽃의 꼼꼼한 기준이 없다는 건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보랏빛 꽃송이 한가운데에 자줏빛 무늬, 즉 단심(丹心)이 선명한 꽃을 흔히 나라꽃으로 여기고는 있지만, 무궁화 꽃에는 그밖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이를테면 보라색 못지 않게 하얀 색 무궁화 꽃도 적지 않다. 또 보라색 꽃이라 해도, 꽃송이 한가운데에 단심이 있는 꽃도 있고 없는 꽃도 있다. 하얀 색 꽃도 마찬가지로 단심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심지어 꽃잎이 겹꽃인 품종의 무궁화도 있다. 세계적으로 300가지 넘는 품종이 있지만, 그 가운데 어떤 형태의 꽃을 나라꽃으로 삼아야 할지 정확한 표준이 없어 아쉽다.

무궁화는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자란 나무다. 대개 개나리처럼 생울타리로 집 주변에 심어 키우며 더불어 살아온, 우리에게는 무척 친근한 나무다. 최근 들어 나라꽃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종 보존을 비롯한 품종 선발 등의 연구와 실험이 적극 진행 중이라 하지만, 아직은 나라꽃에 대한 국가적 인식과 연구는 모자란 편이다.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지정된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알려지기 전인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문양으로 이화(李花)를 이용했다. 이화는 자두나무로 더 많이 부르는 오얏나무를 말한다. 그 뒤, 일제 침략기에 들어서자 왕실의 문양이었던 이화를 대신해 이 땅의 민중은 우리 곁에서 더불어 살아온 무궁화를 자연스레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지배권력층에서 일방적으로 나라꽃을 정해 공포한 거개의 외국 사례와 달리 민중들 안에서 저절로 나라꽃을 지정하게 된 셈이다. 나라꽃 무궁화가 우리에게 더 각별한 이유다.

무궁화는 특히 일제 식민지 침략자들의 지독한 탄압을 거치며 더 옹골차게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식물이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받은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민중 사이에서 무궁화가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낌새를 알아챈 일제 침략자들은 온갖 구실을 들먹이며 무궁화를 탄압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눈에서 피가 나온다며 ‘눈에피꽃’, 손에 닿으면 부스럼이 생긴다 해서 ‘부스럼꽃’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모두 터무니없는 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민족의 상징을 일그러뜨려서 민족 정신을 말살시키겠다는 간악한 처사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오산학교 무궁화동산 사건’에 이르면 침략자들의 무지와 간악함은 극에 이른다. 이승훈 선생이 창립하고 조만식 선생이 교장이던 오산학교에서 1934년에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오산학교에는 독립 운동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무궁화 동산을 조성했다. 이를 알게 된 일제는 무궁화를 없애라고 지시했지만 오산학교는 일제의 요구를 선선히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오산학교의 무궁화 동산에 불을 질러 무려 8만 그루의 무궁화를 단번에 태워 없앴다. 침략자 일본인들이 우리 땅에서 벌인 천인공노할, 한없이 무지몽매한 만행이다.

그 뒤로도 일본인들의 무궁화 탄압은 이어졌다. 한반도 지도에 무궁화를 그려 넣는 걸 비롯해, 우리나라를 표시하는 갖가지 도안이나 표식에 무궁화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건 엄격히 금지됐다. 신문의 로고는 물론이고, 학교의 상징이나 교표에도 무궁화는 금기였다. 그러나 잔혹하게 이어진 무궁화 탄압은 거꾸로 우리 민중의 무궁화 사랑을 더 간절하게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침내 무궁화는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상징이 됐다.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던 침략자들에 맞서 자연을 더불어 살아가는 동화의 대상으로 여긴 우리 민족이 이뤄낸 나라꽃 무궁화의 장엄한 승리다. 광복절 즈음에 도도하게 피어있는 무궁화 꽃, 그래서 더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