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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일본 아리아케해에서 만난 ‘운저리'와 '대갱이'
2017년 08월 10일(목) 00:00
규슈 북서부에 있는 바다 아리아케해(有明海). 후쿠오카 현, 사가 현, 나가사키 현, 구마모토 현 등 4개의 현으로 둘러싸인 규슈 최대의 만이다. 평균 수심 20m에 조수 간만의 차가 6m에 달해 간조 때가 되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난다.

나는 이 바다를 유난히 좋아한다. 아리아케해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이 우리와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지주식 김 양식과 바지락 양식은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꽃게, 박대, 갯가재, 새우 등의 대표 어종은 우리 서해의 것과 너무 비슷하다. 해안 곳곳에서는 문절망둑을 잡는 낚시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겨울이면 굴 구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도로변 곳곳에 장사진을 이룬다. 더군다나 이맘때면 속살을 드러낸 갯벌에 짱뚱어가 지천이다. 우리네 뻘배와 같은 배를 타고 ‘홀치기 낚시’로 짱뚱어를 잡는 어민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얼마 전 아리아케해의 특산물을 파는 가게에서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났다. 그들은 뭔가를 들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대충 들리는 얘기로는 “너무 징그럽게 생겼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것까지 먹냐”는 것이었다. 그들이 들고 있던 건 말린 ‘대갱이’(개소겡)였다. 내게는 그들의 오해를 풀어 줘야 한다는 의무감 대신 환청이 들렸다. “아따, 운저리 그놈 참 맛나겄구만.”

전라남도 영암군의 갯벌은 흙이 곱고 영양분이 풍부해 예로부터 생태계의 보고로 유명했다. 지금도 영암 사람들은 영암 갯벌을 최고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1996년 영암군 삼호읍과 해남군 화원면 사이에 거대한 방조제가 건립되면서 갯벌이 사라졌다. 막대한 양의 농경지와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대신 다양한 갯벌 생태계를 포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갱이와 운저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대갱이(개소겡)는 새끼 장어처럼 가늘고 긴 형태를 가졌는데 머리 부분은 마치 외계 생명체처럼 흉측하게 생겼다. 하지만 맛과 영양에선 장어를 능가했다. 말린 대갱이를 방망이로 통통 두들겨 불에 구워 술안주로 먹거나 갖은 양념으로 볶아 반찬으로 애용했다고 한다. 운저리(문절망둑)는 바닥이 진흙이나 모래로 이루어진 강 하구나 기수역에 서식한다. 살이 부드럽고 담백해 회, 무침, 조림, 매운탕 등 다양한 조리가 가능한 팔방미인이다.

대갱이와 운저리 모두 갯벌이 있던 시절 영암 사람들이 즐겨 먹던 일상적인 식재료였다. 하지만 갯벌이 사라진 지금 대갱이는 순천만에서, 운저리는 해남과 무안에서 가져 온다. 그마저도 나이 든 사람들 외엔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제 영암군에서 운저리와 대갱이를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은 거의 없다. 대신 순천과 무안 등에서나 만날 수 있다. 채 20년이 되지도 않은 세월 동안 영암 갯벌의 기억은 이렇듯 점점 흐릿해져 간다.

영암 갯벌에서 사라진 운저리와 대갱이가 아리아케해에서는 여전히 지역 특산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를 전문으로 다루는 음식점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싱싱한 것은 회, 초밥, 조림, 된장찌개 등으로 먹고, 말린 것은 불에 구워 뜨거운 청주에 우려먹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가공식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대갱이는 일본에서도 아리아케해에서만 잡히는 생선으로 징그러운 생김새와는 달리 꽤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짱뚱어와 마찬가지로 뻘배를 타고 다니며 끝에 갈고리가 달린 작대기로 펄 속에 숨은 대갱이를 채 올린다. 짱뚱어 잡이와 더불어 아리아케해의 여름 풍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환경에 민감한 어종이라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민관 협력으로 해안가의 쓰레기를 수거하는가 하면, 안정적인 산소 공급을 위해 퇴적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주기적으로 벌이고 있다. 덕분에 아직까지 아리아케해에서만 연간 40톤 정도의 대갱이가 잡힌다고 한다.

대갱이와 운저리가 사라진 영암 갯벌 자리에는 요즘 무화과 수확이 한창이다. 원래 영암군 삼호읍 일대는 어떤 작물을 심어도 딱히 잘되는 것이 없는 계륵 같은 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산강 하구 둑이 생겨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농업용수 확보가 쉬워지고 일조량이 늘어나면서 계륵 같은 땅은 무화과 재배에 적합한 땅으로 변했다. 간척 사업으로 확보된 농경지는 차츰 무화과 밭으로 변했다. 덕분에 영암군은 전국 무화과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무화과의 본고장으로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사라지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그 빈자리는 또 다른 무언가가 채워지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들은 그 순환의 과정 속에 놓여 있다. 무릇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엔 애잔함이 깃들어 있다. 추억은 애잔함 때문에 더 강렬하고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인간에겐 유난히 음식에 관한 추억이 많다.

2년 전 영암 5일장 어물전에서 싱싱한 운저리를 만났다. 무안에서 받아 온 것이라 했다. 횟감으로 십여 마리를 샀다. 그걸 근처 식당으로 들고 가 웃돈을 얹어 주고 무쳐 주십사 부탁했다. 운저리의 부드럽고 담백한 살점은 씹을수록 짙은 여운을 남겼다. 바로 그때 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영감님이 한 마디 하셨다. “아따, 운저리 그 놈 참 맛나겄구만….”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