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삶과 교육-이정선 광주교대 교수·전 총장] 갈수록 저하되는 기초학습 능력
일반계 고교 이대로 좋은가〈上〉
2017년 07월 20일(목) 00:00
미국의 인류학자 오그부(Ogbu)는 동일한 유전인자와 문화적 유산을 가진 특정 민족이 어떻게 해서 한 지역에서는 성공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실패하는가를 연구했다. 그는 같은 DNA와 문화적 유산을 가진 아프리카 흑인이 미국으로 이민 간 경우와 불란서로 이민 간 경우 왜 특정 지역에서 성공과 실패가 상대적으로 많고 적은가를 규명하였다.

무슨 거창한 이론을 발견한 것도 아닌데도, 그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인간 행동에 있어서 입문 동기의 중요성과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즉 자발적 이민자와 비자발적 이민자가 취하는 사소한 태도와 삶의 방식의 차이가 결과적으로 이민국에서의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자발적 이민자는 셋방살이의 어려움에서 오는 온갖 차별과 역경 그리고 불편함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만, 끌려서 온 비자발적 이민자는 조그만 어려움 앞에서도 숙명적이고 체념적 태도와 가치관을 갖게 되고 오히려 반사회적 저항 문화를 형성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국제 간 이동뿐만 아니라 특정 조직에 입문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핵심은 역경을 어떻게 성취동기로 승화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학교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자발적으로 입문하는 사람과 하기 싫은 것을 시켜서 억지로 하는 사람 간에 어찌 결과가 같을 수 있겠는가? 서로 다른 입문 동기 즉 자기 의지와 반하여 싫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끌려가는’ 학생과 목표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학생은 학교생활 전반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비자발적 입문자도 모두 다 꿈을 꾸게 하는 학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우리 지역의 경우 특성화계 고등학교에 대한 인기가 적지 않아서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도 특성화고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성적으로 보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즉 한편으로는 중학교까지 성적이 비교적 우수하고 그래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특성화고를 지망하려 했지만 수요공급의 불균형 탓에 진학이 불가능해서 일반계고로 진학한 학생들이 그 경우이다. 오그부 식으로 나누어 보면 전자는 자발적 입문자요 후자는 비자발적 입문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비자발적 입문자에게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비자발적 입문자로 인하여 자발적 입문자들 역시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는데 있다. 실상 비자발적 입문자는 자기의 의지에 반하여 진학을 했고 공부에 관심이 없다 보니 수업시간이 즐거울 리가 없다. 학업에 크게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데, 우리 지역에서만 일년이면 1500명 이상씩 학교를 중퇴하고 학교 밖으로 내몰린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장래를 위한 자기 계발이나 건설적인 투자보다는 주로 시간제 알바를 하거나 피시방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 안에 남아 있는 비자발적 입문자들도 학교생활이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들의 괴로움이 그냥 개인적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긍정적이고 밝은 바이러스보다 부정적인 바이러스가 더 빨리 확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실 내에서 비자발적 입문자들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일선 교사들에 따르면 상위권 학생들마저도 부정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 지역의 기초학습 능력이 갈수록 저하되는 이유란다.

그러면 왜 이들은 비자발적 입문자가 되었는가?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미래가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역량을 습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것인데, 그것은 고사하고 기초학습 능력의 결손과 학구적 무기력감 그리고 의욕이 상실된 학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더 나아가 학업 포기 내지는 학교를 중단하게 되었는가?

지금이라도 이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꿈을 되찾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동시에 모두가 꿈을 꿀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우리는 그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 보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단순히 특목고, 외고, 자사고를 폐지하는 데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이 진학하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일차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