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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영 조안성형외과 원장]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2017년 07월 13일(목) 00:00
상안검 성형술로 쌍꺼풀을 만든 50대 여성이 병원을 찾아왔다. 수술하고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쯤이었던 것 같다. 환자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수술이 잘못 됐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환자를 다독여 진료실로 모시고 들어왔다. 환자의 눈은 붓기가 좀 있어 보이는 것 외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환자에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어떤 부위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나름대로 환자의 불만 요소가 주관적이더라도 어느 정도 타당하고 개선할 수 있다면 재수술 등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이 환자나 나를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나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자부하던 시기였다.

환자는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한숨이 나왔다. 나는 환자의 수술 전 사진과 수술 후 사진을 컴퓨터에서 찾아 비교해 줬다. 모니터에는 확연히 개선된 환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수술 결과는 주관적인 면이 많다. 자기 마음에 들면 잘된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미용수술을 하는 의사의 경우,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 환자는 “선생님이 알아서, 예쁘게 해 주세요” 라고만 말을 했었다. 가장 무서운 말이다. ‘네’가 ‘네’ 판단으로 최선을 다해봐, 대신 맘에 안 들면 다 ‘네 탓’이야, 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환자와의 대화는 40여 분이 지나도록 위의 내용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을 뿐 다른 방향으로 전혀 진전이 되지 않았다. 입에 단내가 나고, 어느덧 대기실엔 환자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슬슬 인내력이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입을 닫았다. 한참 동안 불평을 쏟아내던 환자도 말수가 줄어들면서, 목소리까지 잦아들었다. 결국, 침묵이 시작됐다. 침묵 속에서 환자의 상담부터 수술 당일 상담, 수술과정, 소독과 실밥을 빼던 과정 등이 모두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환자는 5분여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대화를 시작한 환자의 입에선 예상 외로 본인의 가정사가 새어나왔다. 집안에 어떠한 일 때문에 환자는 지난 몇 주일 동안 불면의 밤을 보냈고, 심적으로 황폐화됐다는 등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러던 차에 같이 수술받은 친구가 건넨 ‘눈이 핼쑥해 보인다’는 한마디에 그녀의 분노가 수술한 의사에게로 전이된 것이다. 나로서는 억울할 뿐이었다. 여기서 난 내 무고함이나 나의 억울함, 또는 의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 또한 의사의 몫이라 생각한다.

환자와 내가 그날 대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수술이나 그 수술에 대한 결과가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해결책은 거기서 찾을 순 없다. 환자의 주변 상황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상태를 내가 알긴 어려운 일이다. 나는 환자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몇 달 후에도 맘에 들지 않으면 그때 도와드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라며 상담을 마무리했다. 그 뒤로 환자는 재방문하지 않았다.

성형외과 전문의사로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는 의욕이 앞서던 젊은 시절의 진료 경험담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상담할 때 환자를 주위 깊게 살펴본다. 비이성적인 기대가 있는지, 그리고 내가 하는 상담 내용을 이해하는지, 이 두 가지를 반드시 확인한다. 기대치가 이성적인 범위를 벗어난다면 어차피 수술로 환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상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수술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확인해도 수술 후 환자의 불만족은 거의 없다.

꽤 많은 시간을 환자의 얼굴이나 신체를 관찰하고 상담하다 보니, 이제는 속된 표현으로 ‘의사 반, 무당 반’이 된 듯하다.

환자의 직업부터 스트레스 여부, 시력이 난시인지 근시인지, 편두통을 앓고 있는지, 엎드려 잘 때 고개를 어느 쪽으로 기울이는지, 어느 쪽 치아 상태가 좋지 않은지, 질긴 음식을 즐겨 먹는지 등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자질구레한 삶의 역사는 근육과 주름의 형태로 얼굴에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든지, 몸은 자신의 삶을 기억하고 있다. 최고의 성형수술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잦은 눈웃음으로 생긴 서글서글한 눈가의 주름은 어떤 성형 수술로도 만들지 못한다.

분재처럼 오랜 세월 만들어진 아름다움도 있지만, 바람 부는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면 어떤가? 의재 허백련이 그린 소나무는 가지치기하나 하지 않아도, 하나같이 기품 있고 멋져 보인다. 그러니 잘 살아야한다. 마지막으로 내 다이어리 첫 장에 적어 놓은 글귀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행복은 마음가짐이지 목적일 수 없고, 신뢰와 정의로움은 행복을 양보해서라도 지켜야할 인간된 도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