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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우리 역사관의 현주소
2017년 07월 06일(목) 00:00
지난 3월 LA 소재 한 대학의 초청으로 특강을 하고 왔다. 그때 만난 대학교수 두 분이 잠시 귀국했기에 만났다. 두 교수 모두 한국사에 관심이 많았다. 과거에는 근·현대사가 역사 전쟁의 최전선이었지만 지금은 일제강점기처럼 다시 한국 고대사가 최전선이 되었다.

한 교수는 인터넷에 영문으로 되어 있는 중국 한(漢)나라 강역도를 보여 주었다. 한사군을 북한 지역에 그려 놓고 북한 지역 대부분이 중국 강역이었다는 지도였다. 중국 고대사료들은 한사군이 지금의 중국 하북성 일대에 있다고 거듭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도를 사료에 맞게 고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토로했다. 일본과 중국의 국가 차원 공작에 국내 역사학자들까지 일본·중국에 동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2008년부터 8년간 60여 명의 학자들이 47억 원의 국고를 들여 만든 지도다. 이 사업은 그간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었는데, 최근 도종환 장관 때문에 유명하게 되었다. 도종환 의원이 문체부 장관에 지명되자 보수, 진보 언론이 일제히 나서서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위 의원 시절 이 지도 사업을 중단시켰다면서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 언론들은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정치인들이 개입해서 중단시켰다고만 말하고 이 사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은 열 권 이상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지만 핵심만 말하면 ‘한사군=한반도설에 따라 북한 강역은 모두 중국에 넘겨주었고, 4세기를 표시하면서도 백제·신라·가야를 그리지 않았으며, 독도를 일관되게 삭제시켰다’로 요약된다. 발주처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5개월간의 수정기한을 주었는데, 이사장은 내게 “대한민국 국민세금으로 만드는 것이니 독도는 꼭 그려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독도는 끝내 그려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 사태가 충격이었던 것은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이른바 진보 언론들까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 매몰되어 도종환 의원이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폐기시켰다고 성토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노동·농민운동계 등 노동으로 먹고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로 먹고사는 일부 지식인 진보들은 깊은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 발언은 한국 학자들의 보고서를 토대로 한 것이다. 중국은 2012년 ‘한·중 경계의 역사적 변화(CRS)’라는 자료를 미 상원 조사국에 보냈다. 한사군을 근거로 북한 지역이 중국의 역사 영토였다는 자료였다. 미 상원에서는 이를 한국에 전달하면서 답변을 요구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동북아역사재단에 이를 맡겼고 당시 동북아재단 이사장과 ‘동북아역사지도’ 책임자였던 서울교대 임 모 교수 등이 미 상원에 가서 한국 측 입장을 전달했다. ‘한사군의 남쪽 한계는 황해도 재령강 연안과 강원도 북부’라는 것으로 중국 측의 견해가 대부분 맞다는 내용이다. 한사군 낙랑군이 지금의 하북성 일대에 있었다는 중국 사료는 차고 넘치지만 단 하나도 반영하지 않고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것만 추종했다. 이것이 현재 미국과 중국 측에 전해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북한 유사시 중국이 북한을 자국 영토로 편입시켜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시진핑 발언은 이런 보고서를 토대로 나온 것이다.

북한 강역 대부분을 중국 측에 넘겨주고, 4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에는 신라·백제·가야가 없었다면서 표기하지 않고, 5개월간의 수정기한을 주었음에도 독도를 끝내 그려오지 않은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중지시켰다고 난리를 부리는 학자와 언론인들, 현재 이 나라는 덜도 더도 아닌 구한말 딱 그 상황이다. 정신은 이미 넘어갔고, 남은 것은 영토뿐이다. 그나마 백 년 전에는 백암 박은식, 석주 이상룡, 단재 신채호 선생 등이 우리 역사를 지켰지만 지금 그 분들이 목숨으로 지킨 역사는 땅속 깊이 파묻힌 지 오래다. 그들이 파묻은 역사를 다시 파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본적 역사관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