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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꽃향기의 이유
2017년 06월 29일(목) 00:00
꽃향기가 모두 상큼한 건 아니다. 밤꽃 향기만 해도 그렇다. 필경 꽃에서 번져 나오는 향기이건만 야릇하다. 향기라기보다는 그냥 냄새라고 부르는 게 맞을 듯하다. 동물성의 비릿함이 진동한다. 영락없는 정액 냄새다. 밤꽃 필 때 아낙네들의 외출을 삼가도록 했다거나 ‘밤꽃 피면 재 넘어 과부댁 몸부림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밤나무에서는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서 따로 피어나는데, 비릿한 냄새를 피우는 건 숱하게 많은 꽃가루를 달고 하얗게 피어나는 수꽃이다. 암꽃은 실처럼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수꽃 안쪽에 서너 개씩 숨어서 피어난다. 수꽃의 꽃가루가 바람결을 따라 암꽃으로 날아와 앉으면 혼사가 이뤄진 것이다. 드디어 밤송이를 맺을 수 있다.

바람에 중매를 맡기는 꽃들은 꽃가루받이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낭비로 여겨질 만큼의 많은 꽃가루를 생산한다. 봄철에 소나무 동산을 뒤덮는 송홧가루가 대표적이다. 밤나무의 수꽃이 암꽃에 비해 훨씬 많은 수꽃을 피우는 것도 같은 이치다. 바람에 꽃가루받이를 맡기기 위해 그토록 많은 수꽃을 피웠지만 밤나무는 바람에만 기대지 않는다. 혼사를 위한 안전장치를 하나 더했다. 독특하고 자극적인 향기다. 여러 종류의 곤충을 끌어들일 만한 비릿한 냄새다. 꽃송이 안에 든 꿀까지 곤충을 꼬드기는 데에 한몫 거든다. 자극적인 냄새를 찾아 벌과 나비는 물론이고 풍뎅이·개미·파리까지 몰려든다. 밤에는 나방까지 꽃가루와 꿀을 찾아 날아든다. 밤나무에게는 모두 고마운 곤충이다.

식물은 향기를 짓기 위해 무려 700종류 이상의 화합물을 사용한다. 식물의 속내를 짚어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원료가 그만큼 다양하고 식물마다 제가끔 본성이 다르다 보니, 향기 또한 분류가 불가능할 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라일락이나 장미꽃처럼 상큼하고 달콤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식물의 꽃에서는 동물의 배설물 냄새라든가 생선 썩는 고약한 악취가 풍겨 나오기도 한다.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예로, 초겨울에 피어나는 꽃이 있다. 그즈음에 피어나는 꽃은 향기가 적거나 상쾌하지 않은 향기를 가졌다. 우리네 남녘에서 잘 자라는 팔손이의 꽃이 그렇다. 달콤한 향기를 좋아하는 벌과 나비가 없는 초겨울에 굳이 벌·나비를 유혹할 향기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팔손이는 초겨울까지 활동이 왕성한 파리를 불러들이는 게 효과적이라는 걸 잘 안다. 굳이 향기를 내야 한다면 파리가 좋아하는 향기를 내는 게 유리하다.

꽃향기 가운데 가장 극적인 건 세상에서 가장 큰 꽃송이를 피우는 라플레시아 꽃이다. 인도네시아의 숲속에서 덩굴식물에 기생하는 라플레시아 꽃은 한 송이의 지름이 무려 1m를 넘는다. 일주일 동안 피어 있는 라플레시아 꽃에서는 고기나 생선 썩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라플레시아가 이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건 그 냄새를 좋아하는 곤충, 즉 파리를 끌어들이려는 절실한 생존 전략이다. 거대한 꽃을 피우는 또 하나의 식물인 타이탄아룸 역시 견디기 힘들 만큼 고약한 냄새를 피운다. 지름 1.5m, 높이 3m 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타이탄아룸 꽃을 관찰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방독면을 착용해야 한다.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하여 아예 타이탄아룸을 ‘사체(死體) 꽃’이라고 부를 정도다.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에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게 나눠진다. 그러나 호오(好惡)의 기준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향기와 악취는 사회문화적인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은 쇠똥으로 머리를 손질한다. 모두가 꺼리는 동물의 배설물 냄새를 마사이족 사람들은 중요한 미적 기준으로 삼는다.

비릿한 냄새든, 시체 썩는 냄새든, 장미꽃 향기든 모두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 자연 속의 모든 존재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즈음의 밤꽃 향기는 물론이고, 가을이 되면 거리를 뒤덮을 은행 열매의 고약한 냄새까지, 좋든 싫든 그들의 존재 이유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게 이 땅, 이 자연 속에서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슬기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