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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권 서정교회 담임목사]옛 전남도청 농성장의 어머니들에게
2017년 06월 23일(금) 00:00
산이 되고 강이 되는 사무침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시는 모든 어머니께 편지를 보냅니다.

어머니! 지난 5월에 ‘촛불로 잇는 5월, 다시 타오르는 민주주의’ 슬로건으로 보냈지요.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식 때 국립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할 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어머니들 감동의 눈물 보았습니다. 어머니들은 제가 오면 언제나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퇴진하라고 촛불 들고 함께 외치면서 사진도 찍었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합니다.

37년 전 5월27일 새벽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들이 시내로 쳐들어 왔을 때 어머니의 심장은 녹았지요.

올해 5월16일 어머니가 계신 임곡동을 방문해서 뵙게 됐지요. 지금은 귀가 잘 안 들리지만 신앙생활 하시면서 따스하게 맞이해주던 어머니입니다. 김종연 열사 어머니! 어머니는 모성으로 아들의 죽음 알아차린 것이지요. 아들 만나러 망월동 처음 간 날 어머니는 아들의 묘 앞에서 새끼 잃은 한 마리의 짐승 같았다는 것을 증언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울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을 울부짖음 멈추지 않았고 아들의 무덤을 움켜쥐고 땅바닥을 뒹굴었지요. 눈물 뒤범벅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포효는 하늘에 가 있는 종연이게도 닿을 만큼 온 세상을 흔들었습니다.

박성용 열사 어머니! 어머니는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온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는다.” 노래가 아니라 절규라고 하셨지요.

목숨보다 귀하고 소중한 아들이 저들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어머니께서 더욱 강해진 것을 압니다. 플래카드 몸에 두르고 눕기도 하고 경찰들은 어머니를 개처럼 끌고 경찰서에 밀어 넣었던 적도 있지요. 쫓아오는 경찰들 피하려다 들고 있던 아들의 사진을 놓쳐 박살이 난 사진틀 들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도 있지요.

안종필 열사 어머니! 어머니는 어디서나 예쁨을 받던 그에게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는 재미를 흠씬 느끼게 해주었다지요.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5·18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의 한가운데 서 있던 어머니입니다. 당신의 살과 피와 같았던 아니 그보다 더 귀했던 자식 잃은 어머니를 살게 하는 것은 바로 진상규명이 희망임을 알았지요.

문재학 열사 어머니! 어머니는 재학이를 신묘역으로 이장하는 날 아들의 뼈를 고르는 어머니의 손이 한 없이 떨리고 흩어진 뼈를 쓰다듬어도 재학이는 없었다지요. 어머니는 유골을 가슴에 품고 목놓아 울었고 다시 돌아와 주지 않을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생각이 됩니다. 오직 하나 죽은 아들만은 잊을 수 없다고, 너무 보고 싶어도 그리움은 아직도 너무나 힘이 들고 버겁다고만 하시는 어머니입니다.

이정연 열사 어머니! 어머니는 5월27일 새벽을 뚫고 아들을 가슴에 꼭꼭 담았다고 하셨지요. 절대로 지워질 수도 없는 아들의 얼굴 가슴에 아로 새기고 망월동을 내려왔지요. 아들을 앗아간 이들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않고 그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투쟁의 의지를 굳힌 것이지요. 자식 잃은 가슴에 퍼부어지는 숱한 비수들로 지금 어머니의 가슴은 갈래갈래 찢겨 있었지요. 하지만, 한 가지만은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 잘 알고 있어요. 두 번 다시는 이 땅에서 당신처럼 어처구니없이 자식 잃고 눈물짓는 어머니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2014년4월16일 또 어처구니없는 일로 어머니들은 통곡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세월호 엄마들을 눈물로 껴안아 주셨지요. 오월 어머니들은 도청에서 잃은 아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고 싶은 것이지요.

하지만,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은 1980년 5월 시민군의 최후 항쟁지로서 옛 전남도청을 단순한 건축 문화재로만 여기고 있는 것에 화가 난 것입니다. 5월의 흔적과 기억이 사라진 것을 아셨지요. 그래서 어머니들은 300일이 넘는 가운데 옛 전남도청 복원을 위하여 농성장에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회의가 있을 때 농성장에 가면 늘 자리를 지키는 어머니들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어머니들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은 연세가 많이 든 어머니들이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며 정신은 살아있는 청대처럼 곧기만 하는 어머니들. 옛 전남도청이 사적지로 복원될 때가 곧 올 것입니다. 그때 잊을 수 없는 자녀를 만나게 됩니다. 광주의 어머니들, 5월의 어머니들 씩씩하게 살아가시는 어머니들 사랑합니다. 건강하셔서 ‘오월에서 통일로’ 금강산도 평양도 함께 갈 수 있는 그날을 기도합니다. 물론 5월 아버지들의 처절한 투쟁과 부성애가 있음도 잊을 수 없습니다. 김동수·이강수·유동운·문용동·민병대 열사를 기억합니다. (글 내용은 죽음으로 쓴 5·18 민중항쟁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2’ 참고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