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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순 네팔 카트만두대 객원교수] ‘네실수’(네팔 실버들의 수다)
2017년 03월 15일(수) 00:00
네팔에서 몇 개의 단체 카톡방에 들었는데 가장 재미있는 곳이 40 여명으로 구성된 ‘실버방’이다. 대화 내용들은 건강 정보, 애경사, 우스갯소리,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하다. 50대는 주로 듣는 쪽이고, 다수인 60대보다 몇 안 되지만 인생 경험이 풍부한 70대의 참여가 가장 활발하다. 주고받는 대화가 해묵은 된장처럼 구수하다. 금년 들어 ‘시니어방’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부분 빠져나갔지만 나는 그간의 대화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방을 못 빼고 있다.

실버들은 외국, 특히 개발도상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어린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에 따르는 문제로 맘 졸이는 일은 없다. 하지만 장성한 자녀들의 결혼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고국에 계신 연로한 부모님 걱정을 한다. 한해에, 특히 겨울 동안에 부모님들의 소천 소식이 몇 건씩 올라온다. 급히 비행기표를 구해서 한국에 들어가는 동안에 눈을 감으셔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상황을 전해들을 때는 모두 가슴 아파한다.

어느 겨울에는 네 분이나 돌아가셔서 마음이 울적할 즈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웅’ 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중국 흑룡성에 사는 74세 왕일민씨의 99세 된 어머니는 아주 멀고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서장(티베트)을 가보고 싶어 했다. 가난한 아들은 세발자전거에 수레를 매달아 어머니를 태우고 서장을 향해 세상 구경을 나섰다.

출발하여 900일 즈음, 103번째 생일을 앞둔 어머니는 “너와 세상 구경하는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라며 눈을 감았다. 그 할머니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보러 여기, 네팔에 오고 싶어하셨는지 모른다. 우리는 한동안 자신들의 부모님을 생각하고 서로 위로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실버들은 젊은이 못지않게 멀리까지 다니면서 열심히 일하는데 사진과 함께 활동내용을 중계하니 우리는 구태여 먼 곳까지 안 가고도 많은 것을 간접 체험한다. 최고령자인 77세의 최 목사님은 “저는 현재 덩거리에 와 있습니다. 건축 중인 교회도 둘러보고요. 덩거리가 덥다고 해도 견딜 만 하네요.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달은 덩거리라 그런지 덩그렇게 떴고. 약간 더워도 공기는 상쾌하기 이를 데 없네요. 저만 마스크 없이 심호흡을 할 수 있어 죄송합니다. 더구나 여기는 24 시간 전기가 있어서 아주 별천지 같네요”라고 썼다. 그 무렵, 카트만두에서는 하루 13시간 정전이었다.

또 다른 연장자인 오 선교사님은 “이타하리 동쪽 외곽 마을에 며칠 갔다 왔습니다. 한국에서 무슨 카스트냐고 묻기에 한국엔 카스트 없다니까 아주 신기해하더군요.” 오가는 사람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 길, 좌판을 벌려놓고 조는 듯 보이는 아낙네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최 목사님은 “우리나라에도 분명 카스트가 있죠. 피아노 잘 치면 피아니스트, 기타 잘 치면 기타리스트, 자동차 운전 잘 하면 카스트죠. 무슨 카스트냐 물었다면 차종을 물었을 거예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에 카스트가 없다 하셨다니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카스트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고 아무도 감히 토를 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때로는 카톡방이 입씨름 장으로 변하여 토닥토닥하는 것이 여간 재미있다. 설전 주자는 주로 연장자들이고 그보다 젊은이들은 은근히 응원을 하며 흥을 돋우다가 핀잔을 받기도 한다. 한번은 유쾌한 설전이 2시간 가까이 계속되다가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실·버·분·과’ 사행시로 마무리하였다.

실:실없이 오가는 7순들의 대화에

버:버벅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분:분명 그 속에도 알맹이는 있고

과:과유불급을 알기에 이만 스톱!

해를 거듭하며 우리의 행복한 수다는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