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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인성교육의 요람은 가정이다
2017년 03월 08일(수) 00:00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3월이다. 일부 학부모는 조기 교육을 구실로 학기 초부터 자녀에게 친구들과 어울릴 틈도 주지 않고 꽉 짜인 일과표로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그럴수록 학습과잉으로 인해 아이들의 학습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쑥쑥 자랄 수 있을 때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자녀교육에 대한 욕심은 보통 과도한 선행학습으로 연결된다. 두려움은 내 아이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사실 별 욕심 없는 부모들도 주변에서 가만 놔두질 않는다.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으면 자녀에게 무책임한 것이고, 교육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난하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현재의 행복이 아닌 미래의 승리를 위해 자정이 가까워서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부모는 전장에 내보낸 병사의 귀환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아이가 올 때까지 밤잠을 설친다. 가정이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사(戰士)나 온실 속의 왕자와 공주를 키우는 장소로 전락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건전한 윤리의식이 뿌리내릴 토양이 더 이상 축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학부모가 “공부만 해라, 나머진 엄마가 다해줄게”라는 식이다. 제 방의 이부자리 정리는커녕 등·하교 길마다 자녀를 태운 승용차들로 번잡한 교문 앞은 북새통을 이룬다. 사랑과 교육을 구별하지 못하는 부모에 의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버릇없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대가족사회에서는 엄부자모(嚴父慈母)의 교육기능과 밥상머리 교육이 있었다. 아무리 핵가족사회라 할지라도 때로는 부모답게 엄한 훈육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식도 부모를 존경하게 된다. 응석받이에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모르는 아이로 키우게 되면 그 아이가 자라서 패륜이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받기만 하는 어린애’를 양산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과잉보호와 원칙 없는 보살핌이 가정교육의 주를 이루고 있음이다. 명문대 출신은 많아도 이웃과 공감하면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을 찾기 어려운 게 우리 사회다.

남을 배려하고 예의와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은 붙잡고 가르친다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인성교육의 요람은 가정이다.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해야 할 것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배가 고파 굶어죽을지언정 하이에나처럼 썩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절제와 염치를 알게 된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가정교육이다. 교육학자 루소는 “자식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진정 자녀를 사랑한다면 온실 속 화초로 키우는 대신 역경(逆境)을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는 정채봉의 ‘콩씨네 자녀교육’이 긴 여운을 남긴다. “맹목적인 잘못된 사랑은 비뚤어진 사람을 만든다.”는 경구에 귀를 기울이며 새 학기 첫 출발을 슬기롭게 준비하자. 가정교육이 살아 있는 사회가 살맛이 나고 희망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은펜칼럼은 오피니언 기고 최우수작 수상자의 모임인 ‘은펜클럽’ 회원들의 칼럼을 싣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