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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피아노 치는 鄭대사
2017년 02월 08일(수) 00:00
정동은(58) 광주시 국제관계대사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15년 7월, 광주 동명동의 한 카페에서였다. 지난 2010년 기자가 출간한 ‘처음 만나는 미국미술관’에서 작가 프로필을 보고 광주일보로 연락을 한 것이다. 광주에 내려오기 전, 서울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접했다는 그는 같은 광주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반가웠다고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는 동안 미술과 음악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 내심 적잖이 놀랐었다.

정 대사의 피아노 실력은 프로 연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수창초교 1학년때 부터 피아노를 가까이 해온 덕분에 국제 행사나 문화이벤트의 오프닝에 초대될 만큼 뛰어나다. 2년 전 가을 밤, 조선대 부근의 한옥 레스토랑에서 지인들과 함께 처음 그의 피아노연주를 듣는 순간 왜 ‘피아노 치는 외교관’로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광주 문화계에 ‘피아노 치는 대사’로 데뷔한 계기는 지난 2014년 10월 남아시아 문화장관회의였다. 30년의 외교관생활을 거쳐 그해 8월 광주시 국제관계대사로 부임한 후 처음 맞은 국제행사였지만 세월호 참사 여파로 문체부 고위인사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아 리셉션장 분위기가 조금 썰렁했다.

그런데 문득, 그의 눈에 행사장 한켠에 자리한 피아노가 들어왔다. 정 대사는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 피아노 앞에 앉아 ‘그리운 금강산’과 ‘사랑’ 등 우리가곡 2∼3곡을 연주했다. 그의 ‘마법’이 통해서였을까?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던 행사장은 화기애애한 오찬장으로 바뀌었고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날’ 이후 정 대사의 피아노 실력이 지역 문화계에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그중 지난 2015년 광주시립미술관의 ‘1600+판다 프로젝트’ 오프닝과 아시아 문화전당 트래블 라운지 ‘여행자의 서재’는 그를 정식 연주자로 초청한 케이스.

하지만, 정 대사가 가장 즐기는 건 지역의 문화현장을 찾는 일이다. 퇴근 후 저녁이나 주말에는 미술관, 공연장, 문화전당, 갤러리, 양림동, 광주극장 등을 들러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린다. 이런 이유로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정 대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그는 2년 전 광주를 방문한 스웨덴 대사나 핀란드 대사의 일정에 광주시립미술관을 끼워넣는 문화외교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문화생활을 즐기는 멋진 리더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전시회나 페스티벌, 공연장을 찾는 ‘높으신’ 분들은 있지만 오프닝의 축사나 기념사를 하기 위해 잠시 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향 광주를 이끄는 리더나 CEO, 고위관료들에게 문화마인드는 필수 덕목이다. 문화행사의 개막식에 참석해 ‘한 말씀’한다고 해서 문화마인드나 격이 저절로 올라가지 않는다. 올해는 정 대사처럼 문화현장을 자주 찾는 리더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는. 그리하여 문화를 가까이하고 생활화하는 ‘장’(長) 말이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