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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꿈을 꾸는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
2017년 01월 11일(수) 00:00
뉴욕 맨하튼의 7번가를 지나면 르네상스풍의 건물이 나온다. 전 세계 음악인들이 한번쯤 서고 싶어하는 카네기 홀이다. 하지만 콧대 높기로 유명한 카네기홀에게도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다. 1944년 10월 25일 역사상 최악의 음치 소프라노로 불리는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Florence Foster Jenkins·1864∼1944)공연이다. 대관에 깐깐한 카네기홀이 젱킨스 남편의 ‘로비’에 넘어가 음악회를 허가해준 것이다.

사실 젱킨스 여사는 뉴욕 사교계에선 소문난 음악애호가였다. 부모로 부터 상속받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그녀는 지인들로 구성된 ‘베르디클럽’을 운영하며 자신의 거실에서 종종 음악회를 열었다. 어린 시절 백악관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지만 오른쪽 손이 마비되는 병을 앓면서 오페라 가수로 바꿨다. 재력을 앞세워 유명 지휘자로부터 성악 레슨을 받았고 자신의 노래를 담은 음반 ‘The Glory of the Human Voice’도 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열정이 무색하게 성악에 대한 소질은 전혀 없었다. ‘베르디클럽’을 통해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한 그녀에게 주변의 음악인들은 ‘의리상’ 차마 음치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의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에 감화돼 팬클럽을 만들었다. 당대 최고의 성악가 프리다 헴펠이 자신의 경쟁상대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하니 젱킨스의 ‘착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이런 젱킨스의 ‘허상’을 눈치챈 뉴욕타임스 기자는 그녀의 남편 계략으로 이미 전석(5000석) 매진된 티켓을 어렵게 구해 카네기홀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목소리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소음’에 가까웠다. 하지만 객석의 청중은 일제히 무대인사를 하는 그녀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공연 다음날, 젱킨스의 ‘실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악평 기사로 그녀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그간의 찬사가, 실은 ‘왜곡’의 산물이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 후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숨을 거두기 전, 그녀는 남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내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People may say I couldn’t sing, But no one can say I didn’t sing)

그녀의 진심이 통했을까? 이날 ‘최악의 공연’(?) 실황은 지금도 카네기홀 아카이브검색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음악에 대한 그녀의 무모한 도전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2차례 영화로 제작됐다.

정유년 새해다. 이맘 때면 새로운 다이어리에 ‘버킷리스트’를 적느라 바쁘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작심삼일로 그치거나 성과없이 끝난 신년소망에 자책하거나 허탈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꿈을 꾸는데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는 말자. 중요한 건 화려한 성과 못지 않게, 올 한해 자신의 멋진 꿈을 향해 달리는 열정이니까.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