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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마을’이 흥(興)한 까닭은
박 진 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2016년 08월 10일(수) 00:00
지난달 초, 런던 시내의 킹스크로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2시간 30분 달려 스트랫포드 어펀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 도착했다. ‘에이번 강가의 스트랫포드’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지닌 마을이다. 종착지가 아닌데도 런던에서 기차를 탄 수백여 명의 승객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에서 우르르 내렸다.

기차역을 빠져나와 마을로 들어서자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나무가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았다. 문득 우리나라 시골의 당산나무가 떠올라 마음이 훈훈해졌다. 시내 쪽으로 10분 정도 걷다 보니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오래된 대형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21세기에 중세시대 시계라니! 자칫 ‘튀어 보일 수도’ 있는 시계는 그러나, 의외로 주변 건물들과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은 마을 전체가 16세기에 ‘멈춰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년)의 생가와 그의 발자취가 스며 있는 공간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트랫포드 어번 에이번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생가와 학창 시절을 보냈던 그래머(grammar)학교, 무덤이 있는 성 트리니티 교회, 그의 아내인 앤 해서웨이의 집, 어머니와 딸, 손녀의 집이 옛 모습 그대로 간직돼 있었다. 특히 나무 골조를 덧댄 튜더 양식의 셰익스피어 생가처럼 주변 상가나 관공서, 심지어 은행 건물들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꼭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마을을 재현해 놓은 듯 했다.

‘셰익스피어 마을’의 숨겨진 매력은 작은 가게들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엔티크 숍에서는 촛대나 찻잔·식기 등 옛날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고, 소박한 식당에서도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즐겼다는 차와 케익을 맛볼 수 있었다. 비좁은 가게에서 골동품을 구경하고 셰익스피어 초상화가 걸려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니 450여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느낌이 들었다.

셰익스피어 생가 옆에 자리한 아트숍도 마찬가지였다. 노트·볼펜 등 문구류에서부터 립스틱·초콜릿·넥타이·양산·스카프·맥주 등 수백여 종의 기념품이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한 해 방문객이 6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 마을이 벌어들이는 관광수익은 아마도 엄청날 것이다.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셰익스피어생가재단(Shakespeare Birth place Trust·이하 생가재단)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한때 셰익스피어 생가는 경매에 부쳐지는 등 철거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1847년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기금 모금 캠페인을 벌인 끝에 3000파운드에 구입해 국가기념관으로 지정, 지금까지 영구 보존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설립된 생가재단은 셰익스피어 관련 문화재들을 통합 관리하면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키웠다. 특히 일 년 내내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셰익스피어 탄생일’ 등 크고 작은 이벤트를 개최해 마을 전체를 역동적인 문화 현장으로 변신시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2만 3000여 명이었던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의 인구는 지난해 10만 명을 넘어섰다. 말 그대로 셰익스피어가 마을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 ‘셰익스피어 마을’ 뿐일 것인가.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한적한 시골이었던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네덜란드 작가 반 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고작 73일 동안 머물렀던 하숙집 방과 오베르 성당 등 작품 배경지를 순례 코스로 엮어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키웠고, 에딘버러는 ‘해리 포터’ 작가 JK 롤링이 자주 찾았던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를 문화 상품으로 가꿔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처럼 외국의 문화도시들은 유명 인사들을 활용한 인물 마케팅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예향 광주는 인적(人的) 자산을 브랜드화 하는 데 소홀한 나머지 관광도시로의 면모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흔히 유명 인사나 ‘인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지역’을 방문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한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 가치를 가늠할 때 사람만큼 경쟁력 있는 것도 없다. 사람은 쇠락한 도시를 살리기도 하고, 색깔 없는 도시를 문화의 성지로 바꾸기도 한다. 사람이 곧 브랜드인 시대다.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