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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무친’ 테무친 시련 딛고 초원의 칸 되다
나이만 연합군 제압한 칭기즈칸
몽골인의 강한 생명력 대변
숱한 부족 다투고 화해하며 공존
2016년 04월 11일(월) 00:00
몽골의 수많은 부족이 다투고 화합하면서 다양한 문화 원형을 만들어 냈다. 몽골국립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몽골 부족의 다양한 전통 의상.
몽골 사람들은 전날 마신 술이 깨지 않거나 숙취 탓에 머리가 아프면 “어젯밤 타타르에게 당했다”고 말한다. 칭기즈칸의 아버지가 타타르 족이 건넨 독인 든 술을 마시고 죽은 일화를 빗댄 말이다. 몽골은 수많은 부족이 다투고 화해하며 만들어 낸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여러 부족이 모여 만든 나라답게 지역성도 강하다. 해마다 7월 열리는 나담축제와 연말 씨름대회는 보이지 않는 지역 다툼이다. 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한 지역 경제인들이 돈을 모아 우승자에게 거금을 주고, 아파트와 승용차 등도 후원해 준다. 과거 말을 타고, 칼을 들고 전투를 했듯 최근에는 씨름 등을 통해 ‘지역의 힘’을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몽골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몽골비사’에도 각 부족의 이야기는 잘 남아 있다. 몽골비사는 몽골족과 칭기즈칸의 22대 선조로부터 칭기즈칸의 3남 오고타이(태종)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몽골 민족은 자신들이 바이칼을 건너 온 늑대에게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늑대는 초원을 지배했던 몽골족의 상징이다.

칭기즈칸의 이야기는 몽골 문화 원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비를 잃은 어린 테무진이 고난을 극복하고 몽골 초원을 평정한 과정은 몽골인의 강한 생명력을 대변한다. 또 숱한 부족이 서로 다투고 화해하며 민족을 형성해가는 과정도 몽골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몽골은 약탈혼이 있었던 나라다. 바이칼 호수까지 흘러가는 셀렝가 강 일대에 자리 잡은 메르키드족인 예케 칠레두라는 인물이 예수게이라는 사람에게 아내를 빼앗긴다. 낯선 사내에게 납치당한 여인은 후엘룬이며 이 여성이 낳은 아이는 바로 칭기즈칸이다.

이 때문에 칭기즈칸의 아버지가 예수게이가 아니라 메르키드족인 예케 칠레두라는 설도 나온다. 칭기즈칸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그의 첫째 아들은 두고두고 칭기즈칸의 아들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칭기즈칸의 아내 보르테가 카타르족에 납치당해 낳은 아이라는 오명 탓에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다.

더 나아가 칭기즈칸의 핏줄로 거론되는 메르키드족은 발해 말갈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몽골을 통일했던 칭기즈칸에게 발해의 피가 흐른다는 말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바이칼을 중심으로 고대 종족은 밀접하게 교류를 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몽골비사를 장식하는 주요 부족 중 케레이트가 있다. 케레이트라는 명칭은 옛날에 한 군주에게 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피부가 검어 사람들이 그들을 케레이트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케레이트는 영지가 접해 있던 나이만과 경쟁한다. 종교는 샤머니즘을 신봉하던 대부분의 다른 몽골본토의 부족들과 달리 나이만·옹구트 종족과 함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었다.

나이만도 패권을 다퉜던 부족 중 하나다. 거주지는 알타이산맥과 이르티슈강 사이의 초원에 위치해 케레이트와 인접하고 있었고 적대 관계에 있었다.

테무친에 대항하기 위해 메르키트족, 오이라트족, 타타르족, 키타킨족, 두르벤족, 살지우트족 그리고 알린 타이시(케레이트의 대아미르)와 자무카 세첸을 결집한다. 이 전투는 테무친이 초원의 주인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나이만의 연합군은 패배하고 타양 칸은 사망했다. 그리고 1206년 테무친이 칭기즈칸으로 즉위한다.

나이만 멸망 과정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나이만의 칸이 하루는 자신에게 바쳐진 머리에 말을 해보라고 하자 그때 몇 치나 입 밖으로 혀가 나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불길한 징조로 믿었고, 결국 부족은 멸망했다.

테무친이 가장 미워한 종족은 타타르다. 과거 타타르와 몽골족은 자주 다퉈 원한이 깊었다. 테무진은 전투에서 이기면 포용을 했지만 타타르족은 대부분 살해했다.

메르키트족 역시 타타르족만큼이나 몽골족과는 갈등관계에 놓여 있는 부족이었다. 거주지는 셀렝게강과 오르콘강 하류의 유역으로 몽골족의 영역 서쪽에 있었다.

메르키트는 칭기즈칸의 핏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우엘룬은 원래 메르키트족 칠레두의 아내였지만 칭기즈칸의 아버지 이수게이 바하두르에게 납치된 뒤 칭기즈칸을 낳았다. 또 칭기즈칸의 아내 부르테는 메르키트족에 의해 납치되었다 칭기즈칸에게 돌아와 첫째 아들을 낳는다.

메르키트는 케레이트 나이만과 연대해 칭기즈칸에 대항하였지만 결국 칭기즈칸에 의해 패배한다.



/오광록기자 kro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