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박진현의 문화카페] 책 읽는 풍경
2016년 02월 03일(수) 00:00
몇 년 전 취재차 둘러본 예술의 도시 파리는 명불허전이었다. 루브르 박물관, 노틀담 성당, 오르세미술관, 몽마르트 언덕, 샹젤리제 거리 …. 짧은 일정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끌린 듯 파리의 곳곳을 누비던 기억이 생생하다. 눈의 즐거움은 다리의 무게를 잊게 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풍경은 기념비적인 문화명소나 공원, 성당이 아닌 ‘책 읽는’ 파리지엥들이다. 소설가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등의 아지트였던 책방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나 소르본 대학 앞 광장의 ‘브랭’ 등 크고 작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한낮의 오후를 즐기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했다. 어찌나 마음에 와 닿던지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었다.

책 읽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은 비단 카페나 서점만이 아니었다. 도시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공원 풀밭 위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며칠 전 광주 운림동의 한 카페에서도 책 읽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지인의 초대로 합석하게 된 이 독서모임은 4년 전부터 40∼50대 여성 8명이 매월 읽을 책을 고른 후 정기적으로 만나 커피를 마시며 독후감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날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책은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고 신영복 교수의 ‘담론’이었다. 지난해 11월 독서목록으로 미리 선정했었지만 신 교수의 갑작스런 별세로 이들에겐 특별한 책이 됐다.

그래서 일까. ‘담론’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 하는 이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했다. “(가을에 나뭇가지 끝에 하나 남겨둔)씨 과일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준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요체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이들은 책 마지막 장에 소개된 석과불식에 대한 선생의 가르침에 공감하면서 독서로 그치지 않고 이를 생활에서 실천하자며 자리를 끝냈다.

최근 광주지역 성인들의 독서량이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0명과 초·중·고교생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 광주지역 성인 1명의 독서량이 8.4권으로 서울 13.2권, 인천 13.1권, 대전 11.2권 등 6개 광역시 중 꼴찌였다. 특히 주말과 휴일에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책읽기가 취미이자 일상인 시인 장석주는 “책읽기는 나의 세계를 확장해가며 삶을 보다 의미있게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중에서)고 했다.

물론 생업에 지친 사람들에게 독서는 한가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면 얼마든지 책과 친해질 수 있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 ‘책읽는 파리’처럼. 중요한 건 책 읽는 시간 보다 독서 습관이다. 책 읽는 예향,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