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옥영석 2005년 수상자]옷 고르기, 사람 고르기
2016년 01월 27일(수) 00:00
여러 해전 근무복을 제작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었다. 멋을 내는 데 나름 고집을 부려온 터라, 디자인 좋고 일하는데 기능적으로 불편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가 큰 코 다칠 뻔한 경험이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거라 똑같은 오렌지 색 옷감을 두고서도 누구는 좋아하는 색이라지만, 누군가 중동의 참수복 같다고 해 소스라치기도 했다. 같은 세로줄무늬 블라우스를 두고도 어떤 이는 날씬해 보여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촌스러운 무늬라고 투덜댄다. 그러니 수천 명 입어야 하는 유니폼이나 단체복 제작하는 사람들은 만족도가 60%만 나와도 잘 만든 옷이라고 여긴다. 백인백색, 각양각색이라는 말을 그 해 내내 실감하고 또 실감해야 했다.

그래서 대기업의 유니폼은 유명 디자이너가 수억 원이 넘는 사례비를 받고 제작하기도 하지만 서너 개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선택한 디자인을 선정한다. 문제는 언제나 뒷말들이 많다는 것이다. 서너 가지 시제품이 경합하면 절반 이상 지지받는 건 어렵고 10∼20% 차이 나게 마련인데 하나가 선정되면 나머지를 택한 절반 이상의 구성원들은 당연히 불평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 선택에서 사표를 던진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그 옷을 입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선정된 옷이 더 기능적이든, 좋은 소재를 썼던 이미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린 채, 선택받지 못한 옷을 아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고르고 선택한다는 것은 비단 옷뿐 아니다. 선물하나 하는데도 양말일지 타이일지를 골라야하고 점심을 같이할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주말에 산행을 같이할 친구도 중요하고, 점수에 맞는 학교와 전공을 고르는 것 못지않게 우리는 또 4월이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서너 명 중 한 명을 고르는 선택을 해야 할 터 둘 중 한 명을 고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후보군이 많아지면 오히려 선택이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선택의 기준은 사람 됨됨이가 되어야하고 그것을 알아보는 방법은 살아온 이력이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 존경해왔던 대표적 서정시인 한 분이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시를 쓰고 연설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그를 존경할 수 없었다. 심금을 울리던 그의 언어와 주옥같던 그의 시들은 오히려 가식과 위선의 증표처럼 여겨져, 시가 싫고 시인들이 위선자로 보였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하고 시인은 시로 평가받아야한다지만 그건 자신과 별 관련이 없을 때 쓰는 기준일 뿐이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남긴 발자취는 당장은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대중을 휘어잡는 화술과 후광이 비치는 듯한 인상을 가졌다 해도 집안과 집 밖에서의 행동이 다르고, 십년 전과 오늘의 언행이 다르다면 연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제 다시 정거장이며 지하철역에서는 무리를 지어 합창하듯 인사를 하고 명함을 나누어주기 시작할 것이다. 명문학교를 다녔고 좋은 직장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를 차지했던 이들이 악수를 청하거든 웃음 띤 얼굴과 인상보다, 그의 친구와 직장동료와 사촌팔촌보다 먼 친척들에게 그가 걸어온 길과 이력과 사생활을 물어볼 일이다.

머리 좋은 사람 뽑으려 들면 수능 만점자들도 많고, 인물 좋은 사람 내세우려면 관상가에게 추천받지, 시간 들고 돈 쓰며 선거판 벌일게 아니다. 옷 하나 잘못 고르면 한두 계절 불편하지만 사람 한 명 잘못 고르면 4년 아니라 잊혀질 세월 내내 심기 불편하게 지낼 노릇이니, 이번에는 정말 따져보고 뽑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