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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두려움을 잊는 ‘청춘’들에게
2016년 01월 13일(수) 00:00
지난 주말 관람한 영화 한편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레이트 뷰티’(2013년 작)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의 ‘유스’(Youth)다. 다양성 영화이다 보니 상영관이 많지 않아 난생 처음 오전 9시 상영시간에 맞추느라 바쁜 주말 아침을 보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팔순에 가까운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프레드(마이클 케인 분)와 영화 감독인 믹(하비 케이틀)이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휴가를 보내는 이야기다.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 영화 속 두 노장의 일상은 평범하다 못해 무료하기 짝이 없다. 한적한 숲길을 거닐며 처음 자전거를 배웠던 유년의 기억이나 첫 사랑의 상대를 두고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고민했던 일,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불행한 요즘까지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도 않는 시시콜콜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나이듦’에 대한 두 예술가의 자세는 사뭇 다르다. 프레드가 은퇴를 고민하고 있는 데 반해 믹은 마지막 역작을 남기기 위해 의욕을 불태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프레드에게 영실 왕실로부터 그의 대표작 ‘심플송’을 여왕 앞에서 연주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오고, 촬영을 앞둔 믹에게는 주연을 의뢰한 인기배우 브렌다(제인 폰다)가 출연을 거절하면서 밋밋했던 그들의 일상은 일대 변화를 맞게 된다.

여기에 할리우드 스타인 배우 지미, 왕년의 마라도나를 연상케하는 은퇴한 축구스타, 이별의 아픔을 겪는 프레드의 딸 레냐 등 다양한 등장인물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치유의 과정이 수려한 스위스의 자연풍광과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백미는 삶을 통찰하는 철학적인 대사들이다.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게 된 두 거장이 “나이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른채 시간이 흘렀네”라며 회한에 잠기거나 믹이 청춘과 노년을 망원경과 빗대며 “젊었을 때는 미래만 보지만 나이가 들었을때는 과거만을 생각한다”며 자신의 스태프들에게 던지는 충고는 묵직하다.

개인적으론 할리우드 배우 지미의 고백이 가슴에 와 박혔다. 크랭크 인을 앞둔 새 영화에서 히틀러 역을 제안 받은 그는 캐릭터를 ‘잡느라’ 고민에 빠진 인물이다. 수많은 영화에 출연한 스타이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로봇 연기를 맡았던 ‘미스터 큐’만 기억하는 것이 속상한 그는 우연히 호텔에서 만난 소녀로부터 자신감을 얻고 그동안 망설였던 히틀러 연기에 도전한다.

소녀가 던진 말은 오래전 단편영화에서 그가 상대방에게 건넨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대사였다. 이튿날, 히틀러 복장을 한 채 호텔 식당에서 마주한 프레드에게 그는 이렇게 소리친다. “그동안 시도해보지도 않고 두려움으로 아까운 시간들을 허비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난다.”

이처럼 ‘유스’는 보는 사람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감동의 지점이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첫발을 내딛는 사람만이 영원한 젊음을 누린다는 메시지다. 새로운 한해, 이보다 더 우리를 설레이게 하는 덕담이 있을까?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