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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송년회
2015년 12월 16일(수) 00:00
며칠 전 ‘시립미술관 송년회’라고 제목이 붙은 이메일을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이메일을 열어 보니 기대했던 것과 달라 살짝 실망(?)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미술관 로비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클래식과 국악 감상 기회를 제공하는 송년 음악회 보도자료였던 것이다. 내가 제목을 보고 설레였던 건 시립미술관에서 송년모임을 계획한 친구나 지인의 공지이메일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시립미술관의 송년 음악회 행사 보다는 민간 단체나 개인들이 자체적으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를 감상하며 뜻깊은 한해를 보내는 문화송년회 말이다.

사실 광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송년모임을 갖는 문화애호가들이 많지 않다. 물론 근래 좋은 전시나 콘서트를 단체관람하는 것으로 송년회를 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아예 갤러리나 미술관을 통째로 빌려 한해를 되돌아 보고 친목을 다지는 모임은 드물다. 하지만 문화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이나 유럽은 미술관 모임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연중 관람객들로 붐비는 미국 미술관의 경우 단체모임이 미술관의 재정에 큰 보탬이 될 정도로 대중화됐다.

특히 매년 12월이 되면 미국 미술관들은 분주해진다. 이유는 밀려드는 ‘단체손님’들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그림도 보고 식사도 하며 한해를 갈무리하는 송년모임이 쇄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미국 메릴랜드주 중심부에 위치한 볼티모어 미술관은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송년회 장소다. 미술관은 10인 이상 단체모임에 한해서는 큐레이터가 가이드를 맡는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최고급 수준을 자랑하는 미술관의 레스토랑은 1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워싱턴 D.C의 미식가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그렇다고 연말에만 반짝 특수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도 미술관은 가족들의 외식 나들이에서부터 비즈니스맨들의 사교모임에 이르기까지 인기가 높다. 이렇다 보니 송년모임이 많은 12월에는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이하 인스티튜트) 역시 송년모임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는 마찬가지. 100∼3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룸’이 7개나 되지만 12월엔 수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다. 인스티튜트는 ‘미술관 송년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아예 미술관을 모임장소를 대여하는 ‘컨벤션 마케팅’을 선보여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엔 가족단위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도 벌인다.

미술관 송년회가 인기를 끄는 것은 미술품을 보면서 지인들과 함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색다른 체험’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모임이나 송년회 하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둘러 앉아 술과 음식이 ‘그날의 주인공’이 되는 우리나라 송년회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한해의 끄트머리인 12월, 미술관이나 공연장에서 송년의 아쉬움을 달래보는 건 어떨까? 분명 예술적 감동 못지 않은, 잊고 살았던 일상의 여유를 되찾는 시간이 되리라.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