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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갈 길 먼 ‘성숙한 사회’
2015년 12월 09일(수) 00:00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가운데 나라가 매우 어수선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고 우울한 연말이다. “아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으면 경기 침체, 내가 일자리를 잃으면 불황”이라는 말이 있다.

인턴으로 고용됐다가 계약 종료와 함께 버려지거나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부모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금·은·동·흙 수저로 결정된다는 ‘수저 계급론’이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흙 수저로는 음식을 먹기 어렵고 물려줄 수도 없다. 부모 도움 없이는 자립하기 어려운 데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라는 열패감이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다.

정치권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힘겨루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속성장의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사회의 어두운 모습들이 방치되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추위에 떠는 극빈층을 위한 복지정책보다는 공천관련 계파싸움이나 지역구 예산안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갈등은 매일 쏟아진다. 언변 좋고 목소리 높은 사람들이 두드러지는 세상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언제나 무시되어 왔고, 남보다 더 크게 자극적으로 소리 지르지 않고서는 자기 존재를 나타내거나 집중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모두 자기주장에만 목청을 높이는 세상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봐도 목청 큰 몇 사람이 담론을 지배하는 구조다. 사회가 시끄럽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감이 없다는 것이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말해도 다 알아들을 텐데 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말의 내용이 부실하니 목소리라도 커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야만사회이지, 문명사회가 아니다. 낮은 목소리로 얘기해도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안정된 사회이고, 성숙한 사회다. 선진국이란 결국 성숙한 사회를 말한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목소리를 낮추고 소통해가는 조용한 사회가 되길 염원한다.

찬바람과 함께 12월이 깊어가고 있다. 뒤돌아보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겠다는 다짐은 간 곳 없고,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버둥대며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울 뿐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소외당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가슴을 활짝 열어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서로가 먹고살기에 벅찬 날들이었지만, 소외된 이웃들에 대해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세밑이 되었으면 한다.

마침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기부 소식이 세밑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페이스북 주식의 99%에 해당하는 52조 원을 자선사업을 위해 기부한다는 내용이다. 기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안전망이자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이처럼 성공한 후엔 사회공헌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삶의 방식을 보면서 우리의 척박한 기부문화와 사회의 미성숙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를 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기부는 결코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십시일반으로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차가운 거리를 녹여주는 따스한 겨울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린 꼬마에서부터 선뜻 거액을 내놓고도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는 기부자의 얘기가 우리 모두에게 진한 감동을 주곤 하였다.

“행복은 돈보다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 간의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최근 여러 나라의 행복도를 조사한 독일의 로버트 우스터 교수는 충고하고 있다. 이웃이 따뜻해져야 나도 훈훈해진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남극의 혹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연대하는 펭귄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보듬고 보살피는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