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동홍선생(冬烘先生)
얼마 전 일요일 저녁에 보았던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다. 잠자리 복불복을 앞두고 갑자기 검은색 밴이 나타나고, 담당 PD는 출연자 중 한 명이 과거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본떠 ‘산장 미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이에 출연자들은 여자 연예인과의 미팅을 기대하며 한껏 들떴지만, 미팅 상대는 여자 연예인이 아니라 출연 멤버 중의 한 명이었다. 황당해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그들의 ‘인지 프레임(認知 frame)’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행동 방식, 결과를 결정한다. 미팅이라면 당연히 이성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출연자들은 연예인들이 타는 검은색 밴의 등장에 여성 연예인과의 미팅을 생각하고 가슴 설레었을 것이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말처럼 어떤 이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그는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1박 2일’의 작가는 이성과의 만남이 아님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상대의 프레임을 역이용할 수 있는 미끼를 던짐으로써 멋진 반전을 이끌어 낸 것이다.
고소설 ‘춘향전’에 대한 인식도 프레임에 따라 달라진다. 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문학은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도(道)를 표현해야 한다는 재도론적(載道論的) 생각에 바탕을 두고, 허구성·반체제성·비도덕성·문체의 비속성 등을 근거로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춘향전의 이본(異本)인 ‘광한루기’는 문장 뒤에 소엄의 짧은 평비(評批)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 한 부분에서 동홍선생(冬烘先生)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당대 유학자들의 춘향전에 대한 생각을 언급한다.
소엄은 동홍선생이 ‘광한루기’를 본다면 그저 남녀 사이의 일만 보아도 무조건 ‘음란’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고 했다. 이본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춘향이 이도령을 방으로 맞은 뒤의 ‘업음질’ 장면이나 춘향이 직접 장죽을 빨아 담뱃불을 붙인 뒤 이도령에게 전하는 장면은 지금 보아도 비교육적이니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문학평론가 김치수는 “사회적 현실은 문학 작품의 표층 구조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심층 구조 속에 숨어 있다.”고 했다. ‘춘향전’은 남녀의 사랑을 바탕으로 신분의 문제, 선악의 대립, 신구 세대의 갈등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담긴 의미를 당대의 사회 이념으로 비추면 ‘정절’이 주제가 되지만, 작품 속 이야기에 주목하면 ‘애정’으로, 변화하는 시대정신으로 바라보면 ‘저항’으로 읽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처럼 기존의 가치나 질서에 기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춘향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내면화하였고, 불안정한 미래가 가로막을 때도 시대정신으로 저항하였다. 그래서 기득권과의 타협을 포기하고 사회의식의 성장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오늘의 현실에서도 춘향은 새롭게 창조적으로 읽힌다. ‘춘향전’이 오늘날에도 고전(古典)인 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 때문이 아니라, 내재한 본질이 주는 교훈 때문이다.
동홍선생이란 ‘겨울철에 방 안에 앉아서 불만 쬐고 있는 훈장’이란 뜻이니 ‘소설은 심성을 바로 닦고 인륜을 교화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재도론적 입장을 고집했던 유학자들의 모습이요, 나아가 시대 변화의 당위적 흐름과 요구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자기중심적 프레임을 고집하는 이의 거울이기도 하다.
자기중심적 프레임에 갇히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유난히 추울 것 같은 겨울의 문 앞에 선 즈음, 소름끼치는 과거를 반추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상 뒤에 숨은 본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동홍선생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는 단초가 아닐까 싶다.
소엄은 동홍선생이 ‘광한루기’를 본다면 그저 남녀 사이의 일만 보아도 무조건 ‘음란’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고 했다. 이본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춘향이 이도령을 방으로 맞은 뒤의 ‘업음질’ 장면이나 춘향이 직접 장죽을 빨아 담뱃불을 붙인 뒤 이도령에게 전하는 장면은 지금 보아도 비교육적이니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문학평론가 김치수는 “사회적 현실은 문학 작품의 표층 구조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심층 구조 속에 숨어 있다.”고 했다. ‘춘향전’은 남녀의 사랑을 바탕으로 신분의 문제, 선악의 대립, 신구 세대의 갈등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담긴 의미를 당대의 사회 이념으로 비추면 ‘정절’이 주제가 되지만, 작품 속 이야기에 주목하면 ‘애정’으로, 변화하는 시대정신으로 바라보면 ‘저항’으로 읽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처럼 기존의 가치나 질서에 기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춘향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내면화하였고, 불안정한 미래가 가로막을 때도 시대정신으로 저항하였다. 그래서 기득권과의 타협을 포기하고 사회의식의 성장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오늘의 현실에서도 춘향은 새롭게 창조적으로 읽힌다. ‘춘향전’이 오늘날에도 고전(古典)인 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 때문이 아니라, 내재한 본질이 주는 교훈 때문이다.
동홍선생이란 ‘겨울철에 방 안에 앉아서 불만 쬐고 있는 훈장’이란 뜻이니 ‘소설은 심성을 바로 닦고 인륜을 교화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재도론적 입장을 고집했던 유학자들의 모습이요, 나아가 시대 변화의 당위적 흐름과 요구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자기중심적 프레임을 고집하는 이의 거울이기도 하다.
자기중심적 프레임에 갇히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유난히 추울 것 같은 겨울의 문 앞에 선 즈음, 소름끼치는 과거를 반추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상 뒤에 숨은 본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동홍선생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는 단초가 아닐까 싶다.